음악, 상념
“그 주소에 파킹하고 한 15분 걸으면 된대. 사진빨이 죽여줘.” 그녀가 추종하는 <까페꾼08>님의 지침. 변함없는 푸른 하늘. 세찬 바람. 한적한 도로. 꾸불꾸불한 길. 나무와 바람, 여자. 내가 바라는 모든 것.
제주도에 오기 전 나는 결론을 냈다. 나의 본능에 따라 여자를 찾고, 나의 철학에 따라 녹색 잎과 푸른 하늘, 바다만 바라볼 것.
모든 것은 바람 속의 먼지.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사유지라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데…. 쓰릴있지않어? 누군가가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훔쳐본다는 게.” 좁은 길옆. 차 2대 정도 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살짝 난감한 기분. 고독을 즐기는 주인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듯하다.
“카페에 큰 주차장 있던데 굳이 여기에?”
“바보야! 사진빨이 죽여줘!”
스티브 잡스가 펼쳐 놓은 이상한 현대인의 여가생활.
Behaviors Of the Photo, By the Photo, For the Photo. 사진의, 사진에 의한, 사진을 위한 행위들.
“게다가 곧 폐쇄된대. 주인이 되게 까칠한가 봐.” 당연하지. 나를 위한 공간에 누군가 끊임없이 침범한다면, 나라도 당장 담장을 세우지. 우리는 개찰구 같은 느낌의 울창한 관목 숲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구불구불하고 몹시 가파른 좁은 길로 돌담이 둘러친 묘지도 지났다. 바짓가랑이에 쐐기풀이 사각거린다.
바위 한편을 가득 채운 백리향 냄새가 쏠쏠하다. 신선한 바람에 묻은 달콤한 이끼 냄새도 피어난다. 아담한 폐허가 보인다. 들보가 떨어져 내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다. 나는 미자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풀숲을 지나갔다.
“오, 예!” 미자는 은은한 보랏빛으로 물든 뜰에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정성스레 잘도 꾸며 놓았다. 흰색과 보라색, 연분홍과 표현할 수 없는 색의 수국이 여러 뭉치로 폈다. 빨간 실핏줄이 선명한 달맞이꽃도 나란히 피었다.
여자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포즈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휴대폰을 가로로 눕혀 연신 셔터를 눌렀다. 행복이 몰려온다. 그녀는 찍은 사진을 빠른 손놀림으로 확인한다.
“우이, 너무 밝아.” 여자는 사진 편집 앱을 띄우고 재빠른 솜씨로 교정을 시작한다. 사진 보정술의 대가. 10초도 안 되어 그럴싸한 작품이 나왔다. 감탄이 터져 나온다. 여자는 이제 SNS에 잽싸게 업로드한다. ‘카페 Dionysus 근처. 비밀의 정원.’
미자의 인스타그램에는, 분홍빛이 한바탕 오름을 뒤엎은 세상을 배경으로 허수아비 차림의 모습에서부터, 억새의 꽃송이가 하얗게 핀 언덕에 파묻혀 빨간 입술을 쭉 내민 모습까지, 모두 2,798개의 사진이 등록되어 있다. 아주 가치 있는 일과 전혀 소용없는 것이 혼재한다.
나는 그녀 곁에서, 따스한 봄날 공기에서 느껴지던 다채로운 향에 취한다. 사유는 낙관적인 삶 속에 멈추고, 깎아 앉힌 것처럼 하늘에 박힌 구름은 태평을 속삭인다.
깍지를 꼈던 손이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