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도시 2

by 남킹

나는 무성한 풀 사이에 흐릿한 팻말을 마침내 발견했다.


‘자비로운 자의 회당’


거의 반나절을, 이 폐허의 도시를 헤맨 끝에, 나는 비로소 쉴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무거워진 발을 질질 끌고 검은 옻칠이 비교적 최근에 된 듯한 대문 앞에 도달한 나는 한숨을 쉬며 천천히 건물을 올려다봤다.

비록 처참하게 부서졌지만, 무척 높고 아름다웠다.


수천 년 동안 이곳은 신의 영역이었다.


수많은 교회, 수도원, 성, 궁전, 회관, 대학, 그리고 주택에 이르기까지, 죄지은 인간을 용서한 신의 영광을 표현하는 양식으로 건물들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그런 하늘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티 없이 맑은 날, 누군가 이 고딕 건축의 유물인, 하늘로 솟구친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외벽을 장식한, 아름다운 대칭과 정교한 조각들을 본다면, 절로 감탄이 나와 성호를 그었을 거다.


‘신의 축복이 그대와 함께…’


거친 곳이지만 잠을 자 두어야 한다. 몸뚱이가 잠을 요구한다. 나는 모포를 깐다. 그리고 조심스레 몸은 뉜다. 정적은 어둠처럼 긴장을 동반한다.


지친 몸으로 누운 자리는 다양한 종류의 불편함을 풍기지만 어쩔 수 없다. 항상 고단하다는 것은 아주 잠시나마 편안함의 행복을 극대화한다.


삶의 고단함은 오히려 그 삶을 놓지 않으려는 욕망을 극단적으로 높인다. 모든 고통은 이제 <피할 수 없음>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즐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결국 견디고 버티는 것만이 남았다.


나는 잠을 사랑한다. 아니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은 잠을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잠 속에서 비로소 자유가 된다. 꿈속은 무수한 상황의 단절과 영속을 체험하지만, 그런데도 오직 하나, 절대 죽지 않는다는 장점은 근사한다.


그리고 나는 돔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그리고 소원한다. 꿈에서라도 볼 수 있기를….


죽음의 도시가 끝나는 지점. 마치 아마겟돈을 알기라도 한 듯, 반짝이는 13개의 반월형 돔. 이스트 델타곤 지역. 오염물질 방지를 위한 거대한 방벽이 겹겹으로 쌓인 곳. 버려진 땅의 죽어가는 이들은 늘 이곳을 갈망한다. 모든 오염과 치명적인 방사선을 차단하는 곳.


소위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극소수의 부자들이 거주하는 하베스트 프로텍터 돔. 아이의 생명을 지켜줄 유일한 대피처.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파괴하고 어떤 의도로 종말을 계획하였는지는 관심이 없다. 나는 그저 내 아이가 그의 자연적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곳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나의 여정은 오로지 그곳이다.


**********


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섬뜩함이 몸을 감싼다.


폐허의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나는 몸으로 진동을 먼저 느꼈다. 뒤이어 소리를 들었다. 땅의 흔들림은 미세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신속하다.


유기체는 죽어가고 기계는 섬뜩하리만큼 활발하다. 공포가 내려왔고 혼란과 반목이 뿌리를 내리고 약탈과 은둔, 반성과 냉혈이 공존한다.


셉터지역에서 울리는 둔중한 쇳소리. 세르지역을 순찰하는 용병대가 분명했다. 움직이는 모든 차량은 두꺼운 철갑을 두르고 앞뒤로 무장을 했다. 그들은 우선 강한 굉음으로 환기를 준다. 쥐들처럼 숨어들은 외부인들은 황급히 자리를 뜬다. 하지만 아직 식량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삶을 담보로 숨바꼭질을 하기 시작한다. 나의 유년 시절은 숨기와 달리기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질곡과 난관이 부딪쳐 만든 개인사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성장기 대부분을 폭력의 그늘에 지낸 나에게 남은 과거는, 내 몸뚱이에 새겨진 어그러진 그림이다. 거친 붓 그림의 용.


내 몸을 휘감고 내 삶을 관통하고 걸음걸음의 고통에 아로새겨진 족쇄. 염료와 황산바륨에 산을 녹여 만든 용액. 붓끝이 닿는 곳이 타들어 가며 새겨진 고통으로, 그 시절, 나는 타인을 오로지 증오와 폭력의 대상으로 치환하고 말았다.


헝클어짐 혹은 파괴에 대한 집착. 끝없는 갈증에 길듦 혹은 종속. 욕망은 즉흥적이고 짧은 속죄는 늘 타인으로 눈을 돌려 투영시켰다. 적어도 내가 난독증 치료를 받기 전까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행위는 반성이 없었다.


나는 해밀건 박사의 오픈에어칩을 뇌 속에 박았다. 대부분 환자가 치료 후, 칩 제거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생 간직하고 있다. 간직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나는 내 생각이 글로 표현되는 장치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글에 대한 애착이, 비로소 나를 과거로부터 단절시켰다.


하지만 신은 사람들의 오만과 함께 결국 영원히 사라졌다. 거친 폐허에 내몰린 인간은 애초의 야수로 돌아갔다. 그리고 세상에 널려있는 잿더미는, 재밌게도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가치의 차이, 숭고함의 깊이, 고상함의 넓이가 떠나간 자리는, 처절한 생존 의식이 바람 속 비린내로 번져온다.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이다. 한 톨의 쌀알이 우리의 신앙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죽음의 도시에서 삶을 기록한다.


남킹의 문장 2 - 2023-09-26T191153.33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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