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소설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숨 막히는 도시의 밤, 그 눅눅한 욕망의 늪에 잠긴 한 남자의 초상을 마주했다. 3평 남짓한 ‘너구리 소굴’은 단순한 사무실이 아닌, 고독과 번민, 그리고 위태로운 일탈이 뒤섞인 한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30촉 백열등 아래 희미하게 빛나는 그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익명성 속에 갇힌 채 고뇌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과도 같다.
작가는 탁월한 은유와 상징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너구리 소굴’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주인공의 고립된 현실을 드러내며, 끊이지 않는 담배 연기는 그의 불안과 초조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30촉도 되지 않는 노란 백열등’이라는 구절은, 희미하게나마 인간성을 붙잡으려는 주인공의 애처로운 몸부림을 암시한다.
송 팀장이라는 매혹적인 존재는 주인공의 삶에 강렬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가 건네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단순한 소설이 아닌, 주인공을 욕망의 심연으로 이끄는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섹스 후 독서라는 기이한 조합은,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갈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녀의 자유분방함은 억압된 욕망을 자극하고, 주인공은 양심의 가책과 육체의 유혹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벌레를 잡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현재의 버그 잡는 프로그래머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낡은 시장 아파트의 썩은 내와 바퀴벌레는, 주인공이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를 상징한다. 그는 끊임없이 버그를 잡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이라는 버그는 잡지 못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한때 그의 삶을 빛으로 이끌었지만, 결국 음란 사이트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윤리적 문제들은, 그를 더욱 깊은 고뇌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는 돈과 안락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옥상에서의 은밀한 만남, 그리고 사우나에서 발견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주인공의 삶이 여전히 욕망의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사장의 자는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은, 그가 점점 더 타락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단순한 이야기의 시작이 아닌, 욕망과 양심, 그리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예술 작품이다. 작가는 세련된 문체와 섬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너구리 소굴’이라는 욕망의 미로 속으로 초대하며, 그 안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과 함께 고뇌하고 갈등하게 만든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과연 그에게 어떤 결말을 선사할지, 나는 숨죽이며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