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거리로 나와, 팔을 내려뜨린 채, 이리저리 좁은 골목을 차분하게 걷는다. 창가에 어른거리는 행인, 광고판, 자동차, 쓰레기통, 종려나무, 나의 얼굴이 굴곡을 이루며 지나간다. 그런 광경이 너절하게 발생하고, 몇 번의 방향 뒤틀기가 이어지면, 어느새 먼지를 품은 회색 도로가 넓어지기 시작하고, 나의 상념은, 마치 내 머릿속, 후갑판의 두꺼운 해치를 윈치로 감아올리듯 끙끙거리며, 조소 어린 기억의 냉담함에 부딪히곤 한다. 그건 고통이고 통증이다. 그러므로 나는, 늘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인 것을, 위안이라는 안줏거리로 삼고, 어지러웠던 간밤 꿈자리의 연속에 취하기를 바라거나, 나도 알 수 없는 망상을 창조하기를 소망한다.
혹은, 하이퍼 리얼한 외관 안에, 현대인이라면 의당 그러함을 추구하듯이, 딱딱한 갑피를 덮고 숨어들기를 원한다. 나를 형용하고, 왜곡하고, 협소한, 하지만 멋진 외관의 아바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