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비

by 남킹


그녀의 이름은 올가였다. 겨울에 처음 만났다. 여자는 털토시를 신고 있었다. 금방 코를 닦았는지 코끝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진한 화상으로 흉한 목을 가졌고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속눈썹을 달고 다녔다.

나는 돈을 주었다. 우리는 다소 형식적이고 평범한 섹스를 하였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끝났다. 무엇을 하던 감정이 무겁게 뒤따르던 때였다. 나는 물티슈로 그녀의 입과 음부 주위를 닦았다. 그리고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등받이 위에 두 팔을 괸 채, 돌아누운 그녀의 검고 굴곡진 몸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녀의 크고 물컹거리는 가슴과 달리 뒷모습은 단호하게 보였다. 이윽고 여자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잠을 청하는 듯 보였다. 적막 속에 그녀의 새큰거리는 숨소리가 느껴졌다.

여자는 그날 밤을 꼬박 나와 지샜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아침을 대접했고, 그녀는 내게 쇼핑을 제안했다.

언제나 거리는 한산했다. 길가에 늘어선 앙상한 가로수 위로 보이는 하늘은 청명하였으나 광채 없는 빛을 발했다. 나란히 늘어선 지붕 처마에는 예외 없이 고드름이 다닥다닥 매달려있었다. 여남은 명 되는 변두리 젊은이들이 바쁘게 길을 갔다.

그녀는 마음이 정한 곳으로 나풀거리며 돌아다녔다. 올가는 한가함이 주는 안락함 혹은 의무의 짐에서 풀려난 듯한 해방감에 빠진 듯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부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자주 웃고 스킨십을 즐겼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돌아다녔다. 이윽고 회색 지붕들 위로 불그스름한 햇살이, 지친 육신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인적이 점점 사라진 도로는 한층 더 어둑했다. 어둠 속에 떠오르던 첫 별빛은 희미했다.

여자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떠나왔다고 했다.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고, 그가 무일푼에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생존과 가족 부양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하였다. 매춘도 포함해서.

칠흑같이 어두운 방이었다. 스위치를 켜자, 별안간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겨우 사물이 잡혔을 때, 가장 눈에 띈 거는 그녀의 가족사진이었다. 대가족이었다.

“할머니예요. 저를 키우신 분이죠.”

나의 시선을 쫓던 그녀는 작은 액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액자 속 여인은 이가 빠져버린 입속으로 입술이 온통 다 말려 들어간 채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불빛이 벽에 반사되어 피로를 느끼며 액자를 살포시 들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굵은 빗방울이 살짝 젖혀진 창을 헤집고 들어왔다. 붉은 제라늄꽃이 바람에 건들거렸다. 밤이 유리창을 지배했다.

나는 줄곧 혼자였고 내 삶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주제였다. 그건 그녀를 만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나는 올가를 좋아하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다. 우린 일주일 혹은 두 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났다. 장소는 늘 호텔이었다. 내가 모든 경비를 지출했다. 심지어 생활비까지 주곤 하였다. 나는 그다지 부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주는 돈은 따로 모았다.

그렇게 두 달을 보냈다. 하지만 곧 이별이 찾아왔다.

“아들이 사라졌어요.”

그녀는 줄곧 밑으로 향하던 시선을 위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우수와 불안과 의지가 서린 눈빛이었다.

“그래서 차를 빌렸어요.”

1월의 비가 내리던 그 날. 그녀는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어떤 때는 그렇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보여서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흔들어 아예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그저 그냥 그녀를 생각한다. 나의 뇌에 닿아 맺어진 기억을 떠올릴 때, 그 그리움이 나를 탐하게 될 때를 그저 속삭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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