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10시쯤, 모두 가버린 텅 빈 도서관에 나이 든 경비 아저씨가 미소와 함께 들어 왔다. 이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직장인과 학생들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긴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얼마 남지 않은 해방의 누림을 초조하게 보내겠지만, 백수인 나에게 일요일 밤은, 여자와 보내는 토요일 밤을 제외하고는, 그저 또 다른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어떨 땐 전날과 너무도 흡사하여 마치 카세트테이프를 무한 반복시킨 듯 밋밋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사실, 온당 살기 위해서 짊어져야 할 의무에 대한 부담감 혹은 구속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니 자유로움에 대한 기쁨도 반하여 사라졌다. 하루는 길어지고 생각은 단순해졌으며, 졸업 후 수개월을 괴롭히던 불면증도 자취를 감춰버려, 요즈음은 자정을 넘긴 적도, 새벽에 깬 적도 없다.
여자는 잠을 많이 잔다. 그녀와 같이 아침을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고도 직장생활을 영위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녀의 변명을 빌자면, 나와 있을 때만 많이 잔다고 했다. 주중에 못다 한 잠을 보충한다고도 했고,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진다고도 했다.
아무튼,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여자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리 나쁘진 않다. 영화배우가 아닌 이상, 잠자는 자기 모습을 잘 볼 수 없기에, 눈 감은 여자의 얼굴은, 그녀 자신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나에겐 익숙한 나만의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의 잠든 모습은 평온하다. 좀 더 정확히, 비로소 평온하다. 그녀가 깬 모습에는 까닭 모를 슬픔과 분노가 배어 있다. 그녀는 절대 끊이지 않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한 도시를 좋아하고, 격렬하게 춤추고 과하게 술을 마시며 심하게 섹스에 집착한다.
그녀는 둘만의 은밀한 공간을 찾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치 강박관념처럼 끊임없이 다수의 친구와 동료들을 구하러 다니고, 금요일이 가기 전에, 적어도 2가지 이상의 주말 약속을 잡기 위하여 동분서주한다.
여자를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때쯤에는, 그녀의 다양한 친구들과 하릴없는 학원생들이 공통의 밤놀이에 서로 한 발짝씩 발을 들여놓고, 묵시적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을 때였던 것만큼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