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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성 Aug 03. 2019

주말 빵셔틀

일상 여행

적으면 하게 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어라

가끔 하고 싶은 것을 적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냥 적으면 심심하고 마치 여행 계획을 짜는 것처럼 적습니다. 마치 내일이라도 떠날 것처럼...


밤새 열대야로 뒤척이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보니 집안 여기저기에 아내와 두 아들이 너부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덥지 않은 곳을 찾다 보니 아내와 막내는 거실에 큰 아이는 베란다 쪽에...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선풍기를 찾아 바람이 골구로 가도록 자리 잡아 틀어주고 자동차키를 주머니에 넣고 나섭니다. 마침 어제 적은 것 중 하나가 아침에 빵집에 가서 커피와 달착한 빵 한 조각 먹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막 나온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 오는 것이었습니다.


늦잠을 자서 혼자만의 우아(?)한 시간 갖기는 글렀고 자전거 대신 백만 년 만에 차를 가져가기로 하였습니다. 아파트의 오래된 나무들이 나름 울창했고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어야 여름인 것 같고 이 소리 속에 여름휴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마치 파블로프가 실험한 개의 조건반사처럼..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꺼내니 버려진 차처럼 먼지가 가득합니다. 하기는 1년 주행거리가 2천 킬로 넘기도 힘드니..  먼지를 닦아내고 차를 타고 가면서 얼마 전 어쩌다 함께한 중창단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빵집으로 갑니다. 아침 기분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그리됩니다. (4050 노래라서..ㅎㅎ)


빵집은 벌써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각자 쟁반을 들고 다니면 빵을 담는데 이 역시 가득합니다. 혼자 먹으려고 빵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빵을 함께 먹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빵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분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살 빵은 정해졌고 방금 나온 빵을 구경하면서 (하는 척하면서..ㅎㅎ) 샘플로 먹어보라고 잘라놓은 빵을 여기저기서 주어먹듯 집어 입으로 가져갑니다. 이것만으로도 아침식사가 될 정도.. 아내는 모르겠지요? ㅎㅎㅎ (아내는 늘 제가 살이 찌지 않도록 먹는 것을 제한하십니다. 제가 밖에서 무엇을 먹는지 모른 척하시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삽니다.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빵을 담으면 아내에게 한소리 듣습니다. 자제하느라 힘이 듭니다만 딱 정한 빵만 담아 썰어달라고 직원에게 내밉니다. 오랫동안 빵 써는 것을 담당하던 아가씨 직원이 바뀐 모양입니다. 아마도 승진인 듯싶습니다만.. ㅎㅎ 새로 온 아가씨의 칼질 솜씨가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 힘겨워보입니다.  견디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어주고 더 나은 일을 하겠지요.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을 맞이합니다. 방금 나온 구수한 향이 나는 빵을 옆자리에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느끼는 기분..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주유소에 들려 그간 소홀히 했던 자동차에게도 보상할 겸 휘발유 밥도 주고 세차도 합니다. 주유소 할아버님 한 분이 차가운 생수 한 병을 내밉니다. 그때서야 제가 목마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이 최고의 선물이지요. 원하지도 청하지도 않았는데 내민  것을 보는 순간 바로 원했던 것임을 알게 되는 선물.. 소설가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원했던 것이 아닌데 받고 나서야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게 하는 바로 그런 최고의 선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사 온 빵을 놓습니다. 분명 아내는 두 아이가 남기는 것이 있을 때나 먹으려고 할 것이고 (그렇다고 충분히 사 오면 막 뭐라 하시고..ㅎㅎ) 그래서 따로 산 부드러운 치아바타 빵 하나는 주방에 가져다 놓습니다. 아내용입니다.

아내가 일어나고 주방으로 가길래 칭찬받아볼 요량으로 이야기를 해줍니다. 당신이 생각나서 좋아하는 치아바타 빵을 하나 사 왔다고... 그리고 지난번에 가져다 놓은 자두잼 발라서 하나만 먹어보면 좋겠다고.. 공연히 이야기했다가 본전도 못 찾습니다. 잼은 잼이다. 빵 먹고 게다가 잼까지 먹으려고 하다니.. 가당치도 않다. 당신 배를 봐라.. 뭐 이런 말씀이십니다. 배만 보지 말고 나오는 가슴도 봐주라 외치지만 소용없습니다. ㅠㅠ


아내가 고맙다고 합니다. 아침거리 걱정 덜어줬다고,.. 큰 아이에게는 살짝 속삭이듯 말해줍니다. 네가 좋아해서 사 온 것이라고.. 그리고 샤워하고 나오는 막내 아이한테는 툭 던지듯 말해줍니다.  어제부터 네 생각이 나서 사 오려고 했던 것이라고.. 가성비 최고로 만듭니다. 무뚝뚝한 아들놈들이라 매사 건성건성 대답하지만 그래도 가랑비 옷 젖듯이 계속 잘해주면 고마움을 알겠지요. ㅎㅎ


이상 아침 여행이었습니다. 그냥 적어봤습니다. 아침에 빵 하나 사온 이야기를 가지고 유난 떠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저도 놀랐습니다. 그냥 일어나 빵사왔음.. 하면 끝날 이야기를 적다 보니 이렇게 길어집니다.  오래 산다는 것이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경험하는 시간의 해상도를 높이면 그것이 오래 사는 것이나 진배없고 어떤 방식으로 던 회고의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재차 느껴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그것도 여유로운 주말에..


—-

오늘 다녀온 빵집은 도곡동에 있는 김영모과자점이라는 유명한 빵집입니다. 바게트 샌드위치가 특히 아침에 유명합니다. 8000원 정도 하는데 싸지는 않지만 금방 만든 바삭한 바게트에 신선한 야채와 햄을 아주 적절하게 넣어놓았습니다. 먹으면 괜히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주말에 가족들 아침식사로 참 좋습니다.


그리고 바로 같은 건물 같은 층 건너편의 페르에피스는 유명한 브런치카페입니다. 제 경우에는 일찍 가서 (아침 7시에 문을 염) 첫 바게트 샌드위치가 나오는 시간까지 한 시간가량 노트에 메모도 하고 이것저것 정리하는 차분한 시간을 갖습니다. 빵이 일찍 나오면 그 빵 하나를 풀어 할인해주는 커피와 함께 앉아 먹기 참 좋습니다.


좋아하는 누군가와 잠시 상쾌한 조찬 만남을 갖기에도 아주 그만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고 기분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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