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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성 Aug 02. 2019

사과밭을 지나 돈가스 - 봉천리 능금까페

브롬톤 일상 여행

사과밭을 지나 그녀들의 공간으로

자두와 복숭아에 이어 사과가 익어갑니다. 해가 잘 드는 곳에서는 이미 홍조 띤 사과가 보입니다.


봉천리 연봉마을이라는 약 80가구의 사과 재배 마을이 있습니다. 9~10월이면 수박 반정도 하는 큰 사과가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리는 곳입니다.


영혼이 지쳤을 때는 돈가스를 먹으라는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나 사과밭으로 갑니다.


사과마을에 전원주택을 지은 세쌍의 부부가 있습니다. 아무리 전원생활이지만 시골의 힘든 농사에 왕비님들이 애쓰지 않도록 아무것도 시키지 않기로 했답니다. (아마 그런 조건으로 내려왔을 수도..ㅎㅎㅎ) 그러다 보니 세아주머니가 매우 심심했고, 그러던 차에 무료함도 달랠겸 수다방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집 옆에 카페를 하나 차렸답니다. 장사는 되던 말던..


사과밭을 지나가다 보면 시골 산기슭에 뜬금없이 보이는 ‘능금까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라도 오면 다행이다 싶은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내놓은 돈가스 맛에 반했던 것이지요.


제가 더위에 지친 영혼을 달래려 퇴근길에 사과밭에 들어선 이유입니다. ^^


길가에는 여기저기 주렁주렁 사과가 가득 달렸습니다. 아직은 파란색이 주먹만 하지만 두어 달 있으면 빨갛게 익어가며 거의 두배가 된다고 합니다.


사과밭 시골길을 달려가던 풍경을 드론으로 찍어보았습니다. (드론은 시점의 자유를 가져다주어 여행의 해상도를 두배로 높여줍니다)


아래 영상이 안보이시면 유튜브링크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youtu.be/wULeVbC6Xyo


봉천리 연봉마을 사과밭 길

사과밭 길이 끝날 즈음 능금까페가 나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등심 돈가스를 주문했더니 어찌나 푸짐하게 주시던지요..


날이 금세 저물어가서 서둘러 길로 나섭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보다 마을 동편 천변길을 찾아 돌아가 보기로 합니다.


아무래도 오늘도 가는 길에 날이 저물 것 같습니다. 밤길이 좀 적적하고 때로는 불빛 한점 없는 시골길을 달리면서 무섭기도(사람 나타날까 봐..ㅎㅎ) 하지만 괜찮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시골길을 간간이 지나가는 차도 있으니까요.


역시나 가는 길에 날은 저물어버렸습니다. 이럴 때 참 좋은 것이 해가 진 뒤에 남겨진 여명입니다. 땅은 어둑어둑하지만 하늘은 아직 빛을 잃지 않고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기분 괜찮습니다.


이렇게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인연들이 다가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 중간에 엄청 크고 번듯한 카페가 불을 밝히고 들어서 있고, 아무도 올 것 같지 않은 외진 곳에 식당촌이 있기도 합니다.


일상 여행의 가성비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애당초 기대가 없었기에 여행 중 무엇과 마주해도 득을 본 기분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


시골 도로에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도 시골 동네분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어두운 도로가를 자전거로 가고 있는 제가 생소했던지 금방 지나치지 않고 천천히 따라오시다가 추월해 가십니다. 잠시라도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려는 마음이셨나 싶기도 하고..


밤에는 좀 서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고개와 같은 오르막이 나와도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굳이 무서워서 그랬다고 고백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상하게 밤에 고개는 좀 무섭기는 합니다. 오르막이 끝날 즈음 누군가 서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고.. ㅎㅎ)


고개를 넘어서니 멀리 아파트 불빛이 보입니다. 집에 들어서니 8시 뉴스가 아직 한창이더군요. 오늘도 좋은 하루였습니다.  


퇴근 여행,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좋은 방편 중 하나입니다. 가슴에 남았던 풍경들 사진을 몇 장 골라 아래에 둡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기억에 담는 일은 삶을 구체화하고 시간의 해상도를 높이는 좋은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사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푸짐하고 맛있는 능금 카페의 등심 돈가스와 능금 카페 전경입니다. 아래 전경사진 중 왼쪽 세 건물동이 바로 세 부부가 사시는 전원주택입니다. 그 바로 옆에 세 아주머니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능금까페고요. 본인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는 뭐하고 세분이 매일 모여 서로 수다도 떨고 오손도손 지낼 요량으로 만든 뜬금(?) 없는 시골마을 카페입니다. 그런데 소문도 나고 점심에는 주변에서 점심과 함께 커피 한잔 하러 온 손님들로 가득 찹니다. 세상은 아이러니한 일이 가득합니다. ㅎㅎㅎ


가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길 위에 어둠이 내려앉은 대신 하늘은 저녁해가 남겨놓은 여명이 남아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


어두운 밤에 고개를 넘는 일은 좀 특별한 경험입니다. 좀 긴장이 되기도 하고요. 분명 같은 오르막인데 힘이 들지 않습니다. 마치 고개 위에서 구미호 아주머니가 어서 오라고 힘을 빌려주시는 듯...

밤에 고개를 넘는 중입니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지요. 멀리 아파트가 보입니다.
드디어 사람세상에 온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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