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자전거여행중 어느 오르막 정상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지 6년.. 아무리 해도 친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오르막이 그렇습니다.
풍륜이라 이름붙인 자전거 위의 작가 김훈은 오르막을 다음과 같이 절묘한 문장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겪고 나니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이 문장 그대로임에 놀라게 됩니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김훈의 자전거여행)"
참으로 명문입니다.
한번 쓴 책은 되돌아 보지 않는다는 김훈 작가가 다시 처음부터 정독한 유일한 책이 자전거 여행이란 책입니다. 그리고나서는 다시는 이와 같은 문장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여러 가지를 함축하고 있는듯 합니다.
어쨌든 자전거를 타다보면 이렇게 김훈의 오르막을 만나게 되기까지 몇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1단계는 오르막 위에 있을 때 언제나 끝을 그리워하며, 내리막 위를 달릴 때는 오르막을 잠시 잊습니다.한마디로 아직 철이 덜 든 단계입니다.
2단계에 이르러서는 그토록 기다리던 내리막을 달리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리막이 길어지면 그만큼 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내려간 만큼 어디서인가에 서는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평평하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3단계에 오르면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내리막보다 오르막이 자주 나타나는 착시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올라가다가는 달에도 닿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말처럼 오르막은 돌아서면 내리막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고.. 가끔 오르다가 과감히 포기하고 돌아서 가기도 합니다.
4단계는 애증의 단계입니다. 오르막을 미워하게 됩니다. 어차피 어찌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대상임을 알기에 자신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급기야는 오르막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오르막을 평지처럼 느낄 수 있다는 얼토당토한 공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밉습니다.
5단계는 오르막을 미워해봤자 변하는 것이 아무엇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오르막을 오르면서 내리막을 그리워하고 내리막을 내려가면서 오르막을 떠올립니다. 겸손해집니다. 드디어 김훈의 오르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몇 단계이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