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by 남모

간밤의 소담했던 눈에 대해 써보리라 생각했던 나는 현관에서 마주친 낯선 풍경에 난감해졌다. 열려있는 창문 사이로 마음이 새어 나간다. 지난밤엔 눈꽃이 그리도 아득히 피어나고, 온 세상엔 너그러운 마음들이 춤추었을 텐데 캄캄한 집안에서 식은땀을 흘렸을 흔적들이 안타깝다. 잃어버린 것이라고는 안주도 되지 못할 다이아몬드와 금붙이와 삼겹살 몇 인분쯤 사 먹을 만큼의 지폐. 기왕이면 차라리 내 위선과 눈물과 답답한 심사도 함께 가져갈 일이지. 그들에겐 정말 귀중한 것을 알아보는 혜안의 도적심이 있다던데 진짜 도둑이라면 한 사람의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야지. 이를테면 나의 언어 같은, 피 같은 것을. 만약 그랬다면 집안에 미련처럼 남겨진 족적과 지문 따위는 감식해갈 필요도 없었을 텐데. 흩날리던 눈을 맞으며 황급히 자취를 감춘 도둑에게, 유감.








단서는 짧은 글 短書, 어쩌면 끊어진 글 斷書, 또 어쩌면 어떤 실마리 端緖.

(가시적 초점은 PC 환경에 맞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