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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멍구 Aug 18. 2015

영화가 된 시, 문인수 시인의 '쉬'

2015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트레일러



11th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트레일러
- 영화가 된 시, 문인수 <쉬>






  트레일러란 영화를 압축적으로 줄여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보면 된단다. 그렇다면 영화제의 트레일러는 영화제 전체의 분위기를 함축하여 설명하려는, 말머리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매 번 제천음악영화제에서는 감성적이고 예쁜 트레일러 영상을 내놓았었다. 그런데 이번 2015년 제천 영화제 트레일러는 특히 인상 깊다. 문인수 시인의 시 <쉬>를 모티프로 영상을 만든 것 이라는데, 어쩜 처음 볼 때부터 '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트레일러를 보면 영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시적'인 예술인 지를 느끼게 된다.









  깔끔한 양복 쟈켓에 모자까지 차려 쓰신 노인이 문 밖으로 나간다. 노인은 아버지다. 아들은

  "아버지 어디 가세요?" 묻고, 노인은 대답한다.

  "쉬."

  아들은 변기를 마주 본 아버지 등 뒤에 서고, 아버지 등을 느리게 토닥이며 소리 낸다.

  "아버지 쉬이-".

  그러면 파란 물이 고여 있던 하얗고 매끄러운 변기는 물이 차 색이 선명해진 절구로 맞바뀌고, 그 곳에 아버지의 투둑- 끊기는 오줌 소리가 비를, 세상을, 우주를 상상하게 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트레일러 영상 보기 ▶ https://youtu.be/Y7zJgfWiffo)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시 원문)











  여름 밤을 즐기는 사이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윤아야 언제 오니." "걱정되니까 그러지." "밥 꼭 사 먹고 끼니 거르지 말고" "택시 타지 말고 좀 걷더라도 버스 타고 와"

  마침 의림지 야외 공연에서 <불효자는 놉니다>라는 곡을 듣고 있었는데 말이다. 노느라 할머니를  걱정시키는 내가 딱 노래의 주인공인 것 같아 송구스러웠다....;






  우리 할머니는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숨이 차셔서 많이 움직이지 못하신다. 화장실만 다녀와도 히익- 히익- 숨을 가쁘게 쉬시고, 계단이라도 오르시면 히익- 히익-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폐에서도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할머니는 종종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오셔서 숨 안 차게 하는 약을 받아가시기도 하시던데 "그거 먹으면 좀 나아요?" 하고 물으니 "낫긴 뭘 나아. 더 나빠지지 말라고 먹는 거라 더라." 하신다. 할아버지는 양로원도 자주 가시고, 용돈벌이 식으로 노인들 집집을 방문하며 생사를 확인하시는 일도 하신다고 하던데 할머니는 항상 집에 계신다. 그래도 항상 밥을 차리고 치우는 일은 할머니 몫인 것이 신기할 따름.






  이 트레일러 영상을 만든 이수진 감독은 처음 <쉬>라는 시를 읽고  "그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소리 중에 하나를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던데,

  매 년 찾아뵐 때마다 더 왜소해지시고 숨은 더 가빠지신 할머니를 보는 손녀딸의 감정을 다채로워지게 만든, 시인도 놀랍고 감독도 놀랍다.







할머니의 밥상





우리 할아부지가 자랑스러워하는 대문 옆 국가 유공자 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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