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모티베이션의 중요성 - 나는 왜 중국에서 일하는가?
생활을 반복하고 일상을 지속하고 일을 꾸준히 하는 데에는 누구나 동기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그 동기가 세계정복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 따뜻한 밥 한끼에서 시작할 수도 혹은 여행가서 한달 살기이거나 가족이라는 동기도 무척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다.
다양한 의도와 동기가 존재하지만, 동일한 것은 그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동기가 명확해야 추진력을 얻는 편이다.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가 있다.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융(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로 4가지 선호 지표를 각각 2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총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구분하는 성격 검사 방식이다.
나는 이 MBTI라는 검사를 대학교때 처음 접해봤고 최근 다시한번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수치상에서의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성격유형은 그대로였다.
내가 속한 그 성격 유형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나는 관념적인 동기부여가 중요하고 미래와 가능성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에게는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목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동기에 대해 한번 써보고 싶어졌다.
[중국에서 일한다는 것] 시리즈의 글을 브런치에 연재하면서 여러 루트를 통해 중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문의하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 중에서는 열심히 준비를 해서 중국 취업에 성공했다는 분도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내가 처음 이 글 꼭지를 연재할 때 시간의 순서로 첫 글을 썼던 이유는 '나는 왜 중국에 왔는가'라고 하는 처음의 동기와 목적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을 돌아보는 방법으로써 글쓰기를 선택한 것은 그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보탰다.
그만큼 처음 시작할 때 스스로를 향한 동기부여는 명확했다.
세어보면 중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한지 올해 햇수로 10년차다.
2008년에서 2017년
10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지도 또 그렇다고 아주 크지도 않은 찰진 숫자다.
뭔가 알이 알알이 꼭꼭 박혀서 꽉 찬 느낌의 찰짐 말이다. 10 앞에서는 뭔가 안 하던 짓도 해야할 것 같고 정리라는 것도 해야할 것만 같고 새로운 다음 10에 대한 계획서라도 써야할 것 같은 묵직함과 부담감과 자긍심과 또 기대감이 드는 숫자다.
그런 10앞에 서 있는 2017년
하지만 10까지 오는 동안 중국에 오기로 한 이유와 목적 (#중국에서 일한다는 것 1과 2) 이 언제까지나 그 처음의 형태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모르는 미지의 것을, 도전해보지 않고, 시작의 한 발을 떼지도 않고 가늠하거나 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그 길을 가 봐야지만이 보이는 풍경이 있다. 중국에 오기 전에 품었던 생각이 여기에 와서 살아보고 일해보면서 시시각각 계절에 따라 해를 거듭하며 변화했다.
처음에는 중국을 호기심의 대상, 때때로 만만한 대상, 그리고 내가 뭔가 굉장한 일을 하고 궤적을 남길 것처럼 들뜬 마음이었다면 점점 그 마음은
이곳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민과 질문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휘해야하는 용기와 버티기와 끈기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중국은 1년만에도 강산이 변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 10년의 해를 보내는 동안 삶을 지탱하는 일관성과 본질을 지키고,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동력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가령 내가 하는 신앙생활과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가는 교회와 교회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랄지.. 이것은 내 삶의 펀더멘탈로써 단순히 그 형식 뿐 아니라 본질과 내용으로써 존재했다.
그러나 일상의 면면은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찾고 도전했다. 다녔던 회사들이 그랬고, 물론 내 커리어 상으로는 비교적 오래 근속한 편에 속하는 두 개의 회사를 거쳐 지금은 세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고, 각각 3년 반, 약 4년, 그리고 현재 회사는 거의 3년.
해외에 나와있다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가능한데 가령 학생 신분이거나 가족이 있거나 나처럼 해외 취업을 통해 내 일을 위해 나와있는 경우들. 그렇기 때문에 일은 삶의 나머지 부분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자 많이 돌보고 아껴야 할 대상이었다.
그렇게 두 번의 이직을 하기까지 내가 추구했던 동기와 목적은
하는 몇가지 본질적인 질문들이었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safe zone에 머물 때 나타나는 삶의 현상들, 지루함, 나태함, 생각의 게으름, 긴장하지 않고 대충하려는 습성, 습관화, 열정없음, 이렇게 압박감 없이 편하게 잘 굴러가는 생활의 패턴이 나에게는 경계할 대상이었다.
안정적인 것이 나쁜 게 아니라 안정성을 추구하는 마음의 에티튜드가 나에게 좋지 않다는 스스로를 향한 잣대.
아마 평생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며 살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2030대에는 좀 더 압박감과 새로움 속에 나를 밀어넣어야만이 정신도 육체도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젊었을 때는 말이다.
치열함이라는 말이 주는 가여움 말고 내가 내 스스로에게 치열하게 살아보는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왠만하면 좀 더 어려운 길,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것, 새로운 것, 놀라움을 안겨주는 자리에 가려고 노.력.했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놀라운 게 그렇게 죽어도 하기싫고 가기싫고 대면하기 싫은 대상 앞에서 나를 꺾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고 대면하는 용기를 냈을 때 어느샌가 그 또한 또 다른 익숙함으로 순식간에 변해져있는 것을 볼 때 아 또 하나의 계단을넘었구나 하는 안도가 밀려온다.
이게 삶이 주는 선물인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작은 우물을 나와서 넘고 넘고 또 넘어서 중국에까지 오게 됐고 앞으로는 또 어디로 갈지
설령 그것이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할지라도
생각과 사고의 지평이 어디로 뻗어갈지
기대도 되고 책임도 느낀다.
그럼 어떻게 그 에너지로 충만한 감각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하는 동기부여를 해낼 수 있을까?
결론은 ‘훈련이 필요하다’이다.
첫번째, 나 자신을 이해하는 훈련
두번째, 내면을 바라보고 마음의 변화를 감지하며 그에 맞는 동기를 찾아내는 훈련
세번째, 이제는 나의 동기와 공동체(사회)의 필요를 Sync하는 훈련
단순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단순한 것을 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고 기본이며 매우 중요하다. 자기 자신이 무엇에 설레고 기쁘고 벅차고 에너지가 솟아오르는지를 아는 것은 마치 주파수를 정확하게 맞춘 데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명징하듯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직선으로 갈 수 있는 힌트를 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어떤 칭찬의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하고 나에게 중요한 타인들은 누구인지.. 수많은 파생된 질문들이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여기서 “시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봐야 알고 가볼 수 없다면 간접적인 경험도 중요하다. 책을 읽고 매체를 통해 학습하고 또 다양한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원하는 것, 삶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내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게 졸이고 졸여보는 훈련을 권하고 싶다.
보통은 대학교때부터 이런 훈련이 시작되지만 이런 나 자신을 이해하는 훈련의 시간이 있어도 없어도 사실 겉으로는 큰 차이가 없고 또 할라치면 매우 귀찮고 복잡한 과정이라서 많은 이들이 스킵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내면으로 천착해보고 깊이 들어가보는 이 시간을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30대 40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큰 간극을 나타낼지 모른다.
나를 먼저 알아야 나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보듬을 수 있다. 이 모두가 나를 알아야 가능한 일들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발견해감과 동시에 나의 마음의 변화와 상태를 감지하는 훈련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한 문장으로 구사해 표현하는 연습이 도움을 준다. 가령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정리되듯이, 짧게는 SNS에 쓰는글조차도, 혹은 메모장에 남기는 메모조차도 때로는 길고 긴 문장을 속에서 되뇌여 하나씩 게워내더라도 이러한 글쓰기는 가장 좋은 선생이 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 공동체의 구성원이 나의 필요와 내가 사는 세상의 필요가 싱크될 수 있다면 내가하는 이 일이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한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는 안전한마음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의 씨앗이 내가 중국 10년차에 이제서야 발견한 것이고, 나의 이후 10년의 모습이자 지금도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해 나가는 동기다.
2017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기다리며..
나보다는 타인을 내 것 보다는 우리의 것을 위해 조금씩 내 품을 열어두는 새 해를 바래본다. 그렇게 내년에는 우리 모두 좀더 나은 세상에서 좀 더 보람을 느끼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