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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무 May 28. 2018

나의 아저씨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참 괜찮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아마 이 한 편의 드라마로 박해영 작가와 김원석 감독은 범접할 수 없는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들어간 것 같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보석같았고 2018년 한국의 현재를 살면서 이런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단지 드라마를 이루는 시청률 숫자로써의 성적표가 아니라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을 갖고 응원하고 지켜온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남긴 잔상의 깊이가 주는 여운때문에 이 드라마는 의미있고 또 귀중하다.


겸덕은 그렇게 1시간 반이 되는 거리를 20년이 걸려서 찾아왔고 자기가 선택한 삶으로 인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우정과 애인과 후계리에 대한 마음의 벽을 스스로 넘어섰다.


정희는 겸덕이 더이상 자기가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 만으로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됐다. 여전히 추석과 설날 찾아갈 사람을 만들어야한다는 인생숙제가 있었지만 때로 그것은 전통적인 가족이 아니라 나와 같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지안이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명절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훈이는 헤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몇 계절이 흘렀고 결국 자기는 그대로인데 톱스타로 저 멀리 가버린 최유라를 스스로 차버림으로써 자기자신에게 자유를 속박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라도 여전히 자기를 그리고 정희네와 그 안에 있는 온기를 그리워 해 이따금씩 혼자 정희네에 와 본다는 것을 알게된 어느날, 백지를 펼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진짜의 글을. 여배우와 사귀어서 능력남이라는 형 직장 동료들의 부러움섞인 호기심을 받으며 무슨일 하냐는 질문에 자기는 청소한다고 꾹 눌러 말하는 기훈은 왠만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가 쓰게 될 <노팅힐말고 후계힐>은 분명 대박이 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안에 더이상 천재적인 칭송과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옛날의 박기훈 감독은 없다. 다만 진짜 어른으로 성장한 형제 청소방의 박기훈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복귀작이 기대된다.


장판 밑바닥에 5만원권을 얇게 펼쳐서 모아뒀던 두둑한 지폐뭉치를 동생을 아끼고 동생이 아끼는 외로운 아이 지안이 할머니 장례식에 화환과 음식으로 인생에 가장 기똥찬 순간을 박아넣은 박상훈은 예민하지 않아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가장 사랑스러운 형으로 후계리와 가족들에게 남을 것 같다.


처음부터 지안이를 괴롭힐 마음이 아닌 원래 지안이를 아끼고 돌보려했던 광일이는 도망치는 순간까지 USB를 지켰고 그것은 곧 지안이를 돕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고 그렇게 광일이는 지안이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하며 사라졌다. 부디 어딘가에서 광일이가 그 예전의 눈빛을 되찾고 잘 살아가기를, 마음이 많이 쓰였던 캐릭터였다.


이지아는 참 이 드라마 하기를 잘 했다. 아무리 강윤희가 참회했지만 윤희가 아들 보러 또 유학갈 학교도 알아보러 미국에 간 주말, 혼자 카레컵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고 마는 동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두 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니까. 왜 이렇게 좋은 사람 두고 바람피웠어요? 지안이가 물을 때 윤희는 수만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난 그 대답이 좋았다. 후회하되 실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치유의 힘이 있으니까. 동훈이는 자가치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윤희도 지안이도 모두 사라져 개그콘서트 재방송이나 하는 TV를 아무의미없이 홀로 봐야하는 오후에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나의 구원이 되어줄 수 없고 나의 행복은 내가 주체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에 대한 아주 작은 일말의 확신과 그 확신으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삶의 숨과 온기를 말이다.


박동훈.

정말 강남 어느 길에 가면 삼안E&C가 있고 그곳에 박동훈 부장이 승진한 박동훈 상무가 그리고 자신과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회사와 일을 만들어주기 위해 독립한 박동훈 대표가 있을 것만 같다.

나의 아저씨는 그렇게 오늘도 같은 지하철을 타는 수많은 이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췄기 때문에 소중했고 뭉클했다.


참 좋은 사람 박동훈.

늘 1등을 하기위해, 이기기 위해 무엇이 나를 이렇게 살게 만들었는지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채 19년을 한 직장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박동훈, 그의 삶에 인 작은 균열은 그리고 어쩌면 바닥까지 무너졌을지도 모를 인생의 큰 풍랑과 파도는 도리어 그를 살게 만들었다. 죽어가던 그에게 작은 파장을 일으킨 불쌍한 아이 이지안, 그리고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이지안에게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준 박동훈이 서로를 통해 자기자신을 알아가고 발견해가며 결국은 자기자신을 치유해가는 이야기였다 이 드라마는.


단순하게 다 잘될거야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을거야 라며 나이브한 응원을 건네는 게 아니라

주먹을 꼭 쥐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화이팅' 낮게 내뱉는 마음이 얼마나 무게감있고 어려운 일인지를 인생의 굴곡과 상처와 어두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공감하게 해준 드라마였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가 건네는 이 '화이팅'이라는 세 글자가 그토록 마음에 절절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정말 서울 어딘가에 기찻길이 지나가고 언덕이 많은 후계리가 있을것만 같았다. 인생의 모든 인연은 소중한 것이고 참 좋은 인연을 만나면 꼭 갚아야 한다고, 그것을 갚는 방법은 행복하게 사는 것 뿐이라고 마치 유언을 남기듯 큰 가르침을 남긴 지안이의 할머니와 아들 셋 자식 홀로 키우며 억척같지만 가장 강한 우리의 어머니같은 고두심이 연기한 엄마, 졸업식날 아무도 같이 사진찍어줄 사람이 없는 지안이를 기다려 모두가 가버린 뒤 졸업사진을 한장 찍어준 그렇게 지안이의 든든한 그림자가 되어준 춘대 아저씨, 이 회사때문에 살아있는 것을 느꼈고 이 회사에 다녔던 3개월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비정규직 파견직원의 마음씨가 가련하고 고마워 꼭 비싼데 가서 밥을 사주고야 말고, 다른 직장 자리라도 소개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시원시원한 고집쟁이 회장님 신구 선생님.. 이처럼 흔들리는 이들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울타리가 되어준 어른들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껏 방황했고 또 그 자리로 돌아온다.


마지막회에서 정희와 겸덕이 재회하는 씬, 할머니 돌아가시는 시퀀스, 그리고 몇년이 흘러 모두가 편안함에 이르렀을 때 지안이와 동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많이 좋았고 또 눈물이 많이 났다.


나의 아저씨가 처음 시작할 때 과연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것이 모호하고 의아해 잘 전달이 될까도 고민했다. 16부작, 8주, 중간에 결방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2달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해오며 드라마가 가져가야 할 묵직한 무게감, 때로는 더 깊은 나락으로 우리를 같이 떨어트려놓아야 끝에는 다다르고야 말 그 높은 산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쓰고 지켜봐주는 것이 필요했다. 작가도 감독도 배우들도 지난한 시간을 견뎌와 마침내 인생이 무엇인지 2달간의 시간동안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을 되돌아보며 희노애락을 넘어 나도 누군가에게 치유해주고 치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노팅힐보다 좋은 후계힐같은 편안한 곳으로 지금 있는 이곳을 변화시키고싶은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드라마가 끝난 지금이 그것을 시작할 때인 것 같았다.


<나의 아저씨>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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