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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무 Dec 13. 2020

할까 말까 할때는 그냥 해라

2020년 오피스 라이프 - 내 사무실 구하기  

2020년 covid19가 그 이름을 갖기도 전 모두가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라고 부를 때 공교롭게 나는 중국 베이징에서 설 연휴를 보내러 한국에 온 직후였다. 올해는 설연휴가 빨라 1월 말이었고 1월 중순에 한국에 입국한 뒤 결과적으로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도 나는 아직 한국에 있다.


설연휴 즈음 매일같이 뉴스에서는 이보다 더 무서울 순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중국의 뉴스가 전해졌고 그때만해도 아직 우리나라나 전세계 다른 나라는 퍼지지 않아 마침 중국에 있다가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로 누굴 만나는게 미안했고 자연스럽게 외출을 자제했으며 기획했던 행사도 취소했다.


물론 우한과 북경은 거리적으로도 멀고 실제로 내가 한국에 입국한 1월 14일은 한국의 첫번째 환자가 나오기도 일주일 전이라 시간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안전했지만 그때는 미지의 바이러스가 자아내는 공포감이 모든 연관된 것들을 일시에 파괴하는 괴력을 보이던 때였다. 하지만 더 슬픈 것은 바이러스로 인해 파생된 보이지 않는 공포와 의심은 지금까지 우리를 위축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베이징을 베이스로 창업을 해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베이징에 사무실이 있어서 서울에는 가끔 출장이나 부모님 보러 다니러   모든 삶의 터전이 북경이라서 딱히 서울에 오피스를 내야  이유가 없었다. 언젠가는 서울에 거점을 마련해야겠다는 계획을 미뤄왔는데 이상하게 지금 당장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월을 며칠 앞둔 마지막 월요일에  계획을 실행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유오피스 지점에 찾아가 오피스 투어와 견적 상담을 받고 바로  자리에서 단독 오피스를 계약했다.


당시에만 해도 사용빈도가 많지 않을 것이라 예상해서 괜히 고정비용만 늘리는 것은 아닐까 창업 초기에는 비용 관리가 중요한데 라는 생각이 컸지만 한달에 단 1~2주를 머물더라도, 혹은 장기간 비워두는 일이 있더라도 당장 2월 1일부터 출근을 하고 일상의 루틴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고 상대적으로 일반 사무실 임대보다 부담이 적은 한달치 월세를 추가로 납부하는 것으로 보증금이 가능한 공유오피스에 둥지를 텄는데 처음 찾아가 상담을 받을때만 해도 저는 곧 베이징으로 돌아갈 것이라서 사무실은 거의 비어있을 거에요 라는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역시 사람은 내일 일을 쉽게 예단해서는 안되나보다.


그렇게 지금 이 글을 나는 그 날 계약한 서울의 내 작은 사무실에서 쓰고 있다.

2월에 입주한 지점에서 지금은 새로 오픈한 집 근처 좀 더 가까운 지점으로 이전했고 훨씬 더 쾌적하고 넓은 이곳에서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했다.


2월 1일부터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밖은 여전히 겨울이었지만 단단히 무장을 하고 경의선 숲의 길을 따라 4km 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그 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걸으며 봄이 왔고 꽃이 피었고 꽃이 지었고 새 잎이 돋았고 나무는 무르익어 가을이 왔고 겨울이 왔다.

매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35분 걸리는 출근길이 코로나시대 나의 가장 귀중한 친구였다. 그 길을 걸으면서 했던 무수한 생각들, 다짐들, 그리고 풀과 나무와 하늘에 대고 나눴던 나만 아는 마음들, 그 마음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나를 지켜준 한 해였다.

어쩌면 코로나는 우리를 고립시켰지만,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과 더욱 친밀해지는 시간을 안겨주었다.


많은 계획이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계획이 빗나간 2020년이었다.

그러나 그 빗나간 빈 공간에 예견치 않은 일, 무턱대고 시도한 일, 뜻밖의 행운으로 찾아온 일, 그리고 조금 천천히 지나며 그동안 보지못한 것을 응시하는데서 오는 작은 기쁨들이 빈자리를 채운 2020년이었다.


할까 말까 할 때는 그냥 하길, 갈까 말까 할때도 그냥 가기를.

내 삶에서 이러한 고민은 줄이고 작은 시도들을 더 늘려가는 내년이 되기를. 

어느날 퇴근길의 노을, 사무실을 갖고 매일 걸어서 출근한 무수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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