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Oct 02. 2023

아름다운 나에게


정신없이 바쁜 5월이 막바지를 향해 간다. 오늘은 월요일이고, 나는 수요일까지 5편의 글을 써야 한다. 이 와중에 어제는 오랜만에 놀러 온 조카와 하루를 몽땅 보내야 했고 오늘 아침엔 시 낭송 발표까지 있었다. 할 일은 많고 마음은 바쁘니 이것저것 완결되는 것 없이 시간이 갔다. 정작 오늘 아침까지도 맘에 드는 시를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 오전 8시가 되어서야 시를 정하고 30분 만에 음악 고르기와 낭송 연습까지 끝내 버렸다. 물론 절대적으로 연습량이 부족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랴부랴 운전해서 모임에 가는 내내, 차 안에서 발성 연습을 하며 시를 익혔다. 초등학생 때 하던 벼락치기 숙제를 나이 50이 되어서까지 하고 있다니.


어제까지 연이틀 내리던 비는 다행히 멈춰 주었고 촉촉한 대기와 흐린 하늘은 오히려 시를 나누기에 최상의 날씨였다. 행사장에 들어섰다. 예정에 없이, 낭송회를 다른 모임과 합동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시를 창작하고 낭송하는 모임인데 우리와 성격이 비슷하고 발표하는 날짜가 같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청중이 갑자기 늘어 버렸다. 먼저 시 창작 반 회원들의 자작시 발표가 있었다. 평범한 이웃이 지은 시를 듣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아마 중.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지 않을까. 쓴 사람도 듣는 사람도 따뜻하게 웃게 되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시를 기쁘게 감상했다.


진행 후반 부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읽기만 잘해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무대에 섰다. 용감하게 나아가 무대 중앙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음악에 맞춰 낭송을 시작했다. 부족한 연습에도 완벽하게 시를 낭송하고 멋지게 자리로 돌아오는 나를 상상했지만... 나는 그 짧은 시를 읽으며 두 번이나 틀리고 말았다. 시와 음악을 충분히 맞췄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나름의 의미를 찾자면 실수를 했음에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끝까지 잘 마쳤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내가 스스로는 좀 예뻤다는 것. 즐거운 경험이었던 행사가 끝난 후, 낭송 반 사람들과 차담을 나누었다. 평소 수업을 마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던 터라 함께 차를 마시기는 처음이다.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시 낭송 이야기로 시작해 나무 전지하는 법, 가드닝, 글쓰기 등 각자가 가진 여러 가지 취미활동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온 이들과 풍성한 삶의 경험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오전엔 허겁지겁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지만 오후엔 가볍게 귀가하여 줄지어 나를 기다리는 숙제에도 아랑곳 않고 한 시간여를 심취해 시를 더 낭송했다. 오늘 발표한 윤동주의 시 <길>을 여러 번 녹음하여 내친김에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전송해 들려주었다. 아마 오늘 행복했던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서툰 낭송을 함께 듣고 즐기고 격려해 주는 친구들과 한바탕 인사를 나누고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저녁밥을 달라며 아우성인 배꼽시계를 애써 무시하며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제 할 일을 하라고 나를 채근한다.


한동안, 해야 할 일을 쫓기듯 하는 나의 태도가 마뜩잖았다. 여유롭게 일을 마치고 싶어서 부지런을 떨어도 항상 마감 전날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시간을 소진해야만 결과를 내는 자신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을 너무 책망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고민했던 시간들이 마냥 무의미한 것만은 아닐 것이기에. 그건 틀림없이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망설였던 순간들이 쌓여 이루어졌을 것이기에. 다만 조금 더 힘을 내보라는 격려의 말은 전하고 싶다. 그리고 좀 더 편안해지라고. 서툰 나라도 지금 이대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2023.5.29.)

작가의 이전글 나를 만나러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