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아 묻지 마라 소리 질러 not not today. 꿇지 마라 울지 않아 손을 들어 not not today.
니 눈 속의 두려움 따위는 버려. 널 가두는 유리천장 따윈 부셔. 승리의 그날까지. 무릎 꿇지 마 무너지지 마. That's not today! ‘
그날부터였다. 아이를 재우고 난 그밤, 우연히 보았던 일곱 소년들의 강렬한 춤과 노래. 그보다 더 강렬했던 들꽃 같던 그들의 미소. 보는 순간 반해버렸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운은 나를 단번에 사로 잡았었다.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 있었다. 밤마다 그 아이들 모습을 보고 또 보며 베시시 혼자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K팝은 커녕 대중음악을 안 들은지도 10년이 다 된 나였었다. 소음에 민감하여 오래도록 음악을 아예 듣지 않고 살던 가끔 클래식 음악이나 듣고 살던 나였다. 그런데 무언가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바흐나 사랑하던 내가 밤마다 K팝 아이돌을 돌려보고 있다니! 남편은 그런 내 모습에 매우 당황스러워 했다. 추억의 힙합을 좀 들으려 해도 시끄럽다며 좀 꺼주면 안되겠냐고 하던 아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을 보는 것은 당시의 내게 활력이었던 것을 떠나 인공호흡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생활의 서글픔과 이방인의 고독감, 마음 깊이 믿었던 것들의 무너짐을 함께 경험하면서 나는 완전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갈 길을 잃은 채 붕 떠 있었고 행복은 나와 상관없는 말처럼 여겨졌다. 그런 나에게 BTS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종합선물세트였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온 마음으로 느껴졌던 그들의 순수함은 내 가슴을 깊이 어루만져 주었다.
그들은 달랐다. 완전하게 달랐다. 언제나 겸손했고 자신을 낯췄으며 늘 아이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순수하기에 나오는 천진함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했고 열정적이었다. 그들의 노랫말과 메세지는 알수록 놀라웠다. 나약하게 무릎 꿇으려는 나에게 그토록 신선한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날아 갈 수 없으면 뛰고 뛰어 갈 수 없으면 걸으라고, 걸어 갈 수 없으면 기어가라고 말했다. 내 눈 속의 두려움 따위는 버리고 날 가두는 유리천장 따위는 부수라고 말했다. 그날은 오늘이 아니라고 했다. 그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랬다. 그것들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않아도,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해주었다.
방탄소년단은 내게 ‘고작 아이돌 그룹’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고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살린 하나의 ‘특별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남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17년 당시만해도 지금과 달리 ‘K팝의 선두주자’쯤으로만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누구에게도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가 ‘일개의 아이돌 그룹’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음악을 하는 한국의 친한 동생과 오랜만에 연락을 했었다. 나이는 한참 어려도 나와 결이 비슷하고 통하는게 많아 눈빛만으로도 많은 것을 소통할 수 있는 친구였다.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은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BTS 얘기를 꺼낸 나는 말했다. 그 친구들 덕분에 나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다고. 그 동생이 갑자기 꽥 소리를 지르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저도요!" 알고 보니 둘은 같은 시기에 힘들어했고 같은 방법으로 그 시기를 지나온 것이었다.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이번에는 나보다 언니뻘인 그림 그리는 친구였다. 내가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영혼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한국의 내 절친이었다. 서로를 잘 알기에 함께 있으면 편하고 아늑한 친구. 둘다 무심해서 통화를 자주 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연락을 했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친구 역시 나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역시나 BTS를 통해 활력을 되찾아 새 삶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영화를 하다가 지금은 영화를 놓은 친구가 있다. 이런저런 힘든 일로 오래도록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친구였다. 오랜만에 얘기를 하다 난 또 화들짝 놀란 것이다. 그 친구는 아예 공식 ‘아미’였을 뿐만 아니라 BTS를 학구적으로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까지 하고 있었다. 무기력은 자취를 감추고 반짝반짝 생기가 돌고 있었다. 사랑을 실천하는 자의 환희였다. 소름이 돋았다. 그 친구들과 나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시, 목구멍까지 꽉 찬 창조성을 오래도록 발산하지 못하고 있던 영혼들이었다.
우리 넷은 하나의 같은 지점에 서있던 사람들이었다. ‘소녀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들. 우리는 모두 남들 눈에 띌 정도로 천진한 몸짓과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더 크게 상처받고 더 크게 웅크려 있던 사람들이었다. 넘치는 생명력을 지녔으나 이런저런 삶의 이유로 그것이 막혀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같은 시기에 BTS를 만났고 그들을 ‘알아보았고’ 그들에게서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들과 처음으로, 내 안의 BTS에 대한 진짜 느낌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느낀 방탄의 순수함과 맑음, 그것이 어떻게 가슴 안에서 치유로 작용하는지를 그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 친구들을 통해 나의 느낌과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크게 성공한 다른 예술가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물었다. "BTS를 봐도 난 아무 감흥이 없는데,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너는 BTS가 필요 없으니까. 그 친구들에게 공명하는 고유 주파수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어. 그건 생명력이 막혀 있던 사람들이야.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고 넘치는 생명력을 발산하지 못해 신경증에 걸려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주파수에만 접속이 되는 거야. 너는 이미 너의 길을 가고 있고 큰 성취까지 이루었잖아. 그러니 너의 주파수에는 접속될 수가 없는 거야"
실제로 앞의 세 친구들은 BTS를 만난 이후 커다란 삶의 도약을 맞이하였다. 무명 음악인이었던 친구는 그 후 첫 앨범을 발매하였고, 오래 그림을 놓고 있었던 친구는 새로운 작품과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영화 하는 친구는 제2의 인생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나 역시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 ‘나의 글’로 세상을 만나고 있다. 그처럼 방탄의 힘은 경계를 넘어간다. 그 주파수에 한번 걸려들면, 막혀 있던 창조성이 깨어나고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세계의 그 많은 ‘아미들’이 그러하리라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팬들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BTS의 핵인 그들의 ‘강력한 순수함’과 접속했을 때에만 일어나는 마법이었다.
* 2020 FESTA 시작을 축하해요 BTS!
* BTS의 '강력한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영상 하나를 추천드립니다. http://bitly.kr/R7tEYi53s7
* BTS <Not Today> 뮤직비디오 감상을 추천드립니다 http://bitly.kr/y1B8kAi4fJ
* 필자의 다른 BTS 글
https://brunch.co.kr/@namoosanchek/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