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랑, 여행하실래요? > 1편
덥다. 그늘만 들어오면 시원했던 프랑스 여름도 옛말이다. 한여름에 40도까지 온도가 치솟고 열대야가 생기고 스콜이 쏟아지는 프랑스라니. 그럼에도 여전히 에어컨이 귀하신 몸인 프랑스기에 여름을 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한국은 얼마나 더 힘들까. 여름이 아예 아열대 기후로 변해버린 한국은 지금 물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 상쾌하고 기분 좋은 소식들만 있어도 모자랄 이 시국이 참 야속하다.
글도 그렇다. 뜨거운 햇볕 아래 오늘도 수고로운 하루를 보내셨을 독자님들을 위해, 좀 더 밝고 즐겁고 힘이 되는 글을 써드리고 싶은 마음. 그러나 여름 전 끝내지 못한 '낯선 프랑스' 글들로 괜히 피로감을 드리는 건 아닌지 사실 조금 염려도 되고 죄송한 마음도 있다. 고단한 하루의 끝, 독자님들께 필요한 한마디는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저랑, 여행하실래요?> 시리즈!
오늘은 그 첫 번째로, 프랑스 남쪽 지중해에 떠있는 무지 커다란 섬이자 프랑스와 유럽인들의 '꿈의 섬'이라는 휴양지. 코르시카다. 제주도의 4.7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진 지중해에서 4번째로 큰 섬. 높은 산과 형형색색의 바다 그리고 야생의 자연과 고대 유적이 몽땅 살아 숨 쉬는 섬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코르시카가 프랑스령이 된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코르시카는 오래도록 현재 튀니지에 있던 고대도시 '카르타고'에 기원전 237년까지 속해있었으며, 3차 포에니전쟁 이후 로마 공화국에 점령되어 522년까지 로마 제국 아래 있었다. 로마 멸망 후 아랍 제국과 롬바르드의 영향을 받다가 1284년 제노바 공화국의 영토가 된다. 코르시카가 프랑스 영토가 된 때는 겨우 1768년이다. 즉 현재 코르시카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유적들은 프랑스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의 고향으로 더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생전에 한 짓을 생각하면 그의 업적으로 미화된 '영웅 신화'는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초기 식민지에서 그가 저지른 악행들만 열거해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코르시카에 가는 방법은 비행기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쪽 항구에서 크루즈를 타고 들어간다. 저녁에 출발하여 배 안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도착하는 것. 6년 전 우리도 그 배를 타고 갔다.
쪽빛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배가 만드는 이 무늬를 좋아한다. 거친 파도와 하얀 물거품의 아름다운 조화
드디어 도착한 코르시카. 숙소로 향하는 길, 돌산과 오래된 돌다리가 조화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코르시카만의 고유한 빛깔이 녹아있는 바다 빛깔과 거친 자연. 눈이 부시도록 쏟아지는 햇살 아래 파랑.
언덕을 따라 올라가서 바라본 코르시카 북서쪽 해안가 절경. 산과 바다와 녹지와 오래된 마을.
계속 쭉 걷다 보면 지중해만의 건조한 녹빛 야생이 그대로 펼쳐져 있는 융단이 나온다. 장엄하다.
끝없이 펼쳐진 야생 융단 위로 파랑이 넘실대고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하얀 쪽배들. 오직 자연만 있다.
투박한 산속 마을에 촘촘히 서있는 집들. 파스텔톤 녹빛과 어우러진 빛바랜 오렌지빛이 예쁘다.
지평선으로 바다가 보이는 마을 어귀. 작은 테라스. 정돈되지 않은 오래된 골목을 걸음은 언제나 좋다.
산을 내려오면 보이는 풍경. 삼색 바다 빛깔 위로 인어들이 떠있는 듯, 그녀들은 참 평화로워 보인다.
내륙 깊이 들어가면 한여름에도 눈이 있는, 2천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들이 나온다. 코르시카 산봉우리들
산속에는 투명한 강줄기들이 흐르고, 옛 제노바인들이 만든 돌다리 밑으로 꿈같은 계곡이 펼쳐져 있다.
산속에는 선사시대 유적들이 기다린다. 고대 켈트인들이 남겨 놓은 석상들과 고요한 기운의 고인돌 군락지
마치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연상시키는 듯한 켈트 석상들은, 심지어 생김새마저 어째 우리를 닮은 듯 하다.
산등성이를 따라 구비구비 내려오면 곳곳에 펼쳐져 있는 녹빛의 산 그리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제법 가파른 계곡 밑으로 기암절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코르시카 서남쪽 해안가 도로에서 잠시 멈추고.
거친 풍광만큼 거친 바람이 부는 바닷가. 깊은 빛깔의 바다가 거친 파도를 뿜으며 무심한 바위를 오간다.
햇살이 더 강한 남쪽 마을에 이르니, 맑은 도화지 위에 분홍분홍이 참 예쁘게도 얹어져 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 주는 영감이 있다. 그 뒤로 눈부신 파란 하늘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회벽색의 깎아지른 절벽이 펼쳐져있는 코르시카 남쪽 해안. 섬이 크니 모든 풍경을 다 가지고 있다.
아일랜드 서쪽 지형을 보는 듯 끝도 없이 이어진 바다 절벽들. 바람과 파도에 맞서 꼿꼿이 서있다.
고성들과 예쁜 구시가지가 있는 서남쪽 도시들에는 커다란 항구들이 있다. 유럽 곳곳에서 배가 들어온다.
개인 보트를 가진 친구 배를 타고 들어간 '프라이빗 비치' 크리스털 빛깔 바다. 부자들의 전용 해변이다.
스펙트럼 넓은 코르시카는 우리나라 동해 바다 같은 풍광의 해변도 있다. 고운 모래의 촉감은 덤!
하지만 막상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허름했던 성곽이 있던 작은 바닷가였다. 원 없이 걷고 또 걸었던.
그 허름한 작은 동네 옆 마을. 옛 성곽의 흔적과 올리브 나무들. 낡고 편안한 빈티지 느낌의 공기가 좋다.
친구가 배 낚시로 잡은 도미로 해준 도미찜. 고춧가루 대신 토마토 양파 올리브유로 맛을 낸 지중해식 요리.
사진을 꺼내 보는 지금 다시 걷고 싶은 곳. 어떠한 힘도 들어가 있지 않던 낡은 편안함이 좋았던 그곳.
낡은 성곽의 바닷가 아름다운 산책로 위로 보랏빛 노을 그리고 구름 한 점. 그 저녁의 아름다웠던 공기.
아직 더 가보고 싶은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지만, 그럼에도 한번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발길 닿는대로 가면 되었던 그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지금. 어서 이 시기가 끝나고 다시 자유롭게 닿을 수 있기를.
세계를 방랑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나는 바란다. 아직 나는 더 가야 할 곳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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