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기생충을 보고 왔다. 피곤한 상태로 관람을 했음에도 영화를 보고 난 후 정신이 확 들어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극장을 빠져나왔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미쳤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옆자리에 있던 프랑스 남자 관객이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봉준호의 천재성이 '현실'과 만났을 때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놀랍게 목도한 순간이었다.
사실 이렇게 빨리 개봉을 해서 좀 놀라기도 했다. '버닝' 같은 경우는 칸에 초청된 이후 6개월이 지나서야 개봉을 했었기 때문이다. 보통 여기서 한국영화를 보려면 '예술영화 전용극장'을 일부러 찾아가야 겨우 이창동이나 홍상수 영화를 간간이 볼 수 있는 게 다였는데, 기생충은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가장 대중적인 일반 극장들에서 버젓이 상영을 하고 있었다. 황금종려상의 위력이 크긴 크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기생충은 현재 프랑스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평일 저녁이라 예매를 하지 않고 갔는데 극장에 빈 좌석이 없었다. 다행히 마지막 두 자리가 남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못 볼 뻔하였다. 아. 얼마 만에 극장에서 보는 한국 영화인지.
영화 초반 기택이네 가족들의 일상과 대화가 오갈 때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폭소를 터뜨렸다.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웃음 포인트에서조차 다들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송강호는 역시나 절제 있는 연기로 완벽하게 기택으로 분해있었고 '봉테일' 감독은 기택이 고개를 돌릴 때 낮은 싱크대에 머리를 찧는다거나 와이파이 이름이 '커피 XX'로 시작하는 것 등을 참으로 섬세하게 시나리오에 담아내어 더욱 현실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양말 빨래가 무심히 걸려있는 반지하방을 비춘 '첫 장면'을 보면서 감정적 동화를 겪은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안다. 서울에는 셀 수 없는 반지하방이 있고 그곳은 여전히 수많은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기에.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서울만의 이 독특한 주거형태를 보고 많이 놀랬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곳에서 살지? 나무 한점 없는 주택단지들 사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해가 안 드는 땅 밑에서? 서울의 모습은 내게 그렇게 '기괴'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지상'에서 쫓겨나 땅 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서울의 첫 집은 작은 '옥탑방'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하늘을 맘껏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여름에는 잠들 수 없을 만큼 더웠고 겨울에는 변기가 어는 게 다반사였다. 계약이 끝날 무렵 집을 보러 다니다가 그 집보다 넓은 반지하집을 구경하게 되었다. 겨울이었고 사방이 막혀있던 그 집은 너무나 따뜻했다. '이제 추운 곳에서는 살지 말자'며 바로 그 집을 계약하였다.
하지만 따뜻한 것은 겨울 잠깐 뿐이었고, 봄이 되니 지하만의 특유의 쾌쾌함이 답답하게 짓눌러왔다. 집에 들어설 때마다 침침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 '우리는 햇빛이 있어야 하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햇볕이 필요했다. 어디라도 햇빛만 있으면 되었다.
기택이네 가족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어디라도 그저 햇빛만 있으면 되는' 그런 현실. 그곳이 어디라도 좋으니. 그것이 무엇이라도 좋으니. 뭐든 할 수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되는.
그들에게 '간절했던 햇빛'은 바로 '생존의 열망'과 같은 이름이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포함하여 세트와 미술, 촬영과 조명등 영화적 기술이 가진 모든 테크닉에서 이 영화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것을 실현해내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저 내가 놀랬던 건 독창적인 스토리를 현실에 녹여내어 감쪽같이 담아내었다는 것과 그것을 끌고 간 엄청난 힘이었다.
특히 지하실 씬의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졸이며 몰입해있었는데, 그의 전작 '마더'에서 김혜자가 진구의 집을 찾아왔다 숨 졸이며 숨어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극장의 공기는 압도적인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서스펜스보다 쫄깃하게 어떤 호러보다 오싹하게.
기택이네가 박사장의 집을 겨우 빠져나와 폭우 속에 집으로 돌아가는 씬은 그 어떤 장면보다 처연해서 아름다웠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만' 닿을 수 있는 '내 몸 하나 뉘일 곳'. 그곳으로 가기 위한 길은 그 길을 걷는 신발마저 흥건하게 물이 차오르는 곳이며, 고단한 몸을 뉘일 곳은 햇빛이 아닌 물폭탄이 기다리는 곳이다.
그곳이 '내 집'인 그들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지울 수 없는 냄새'를 가진 자들이며, 현실을 지배하는 시스템 안에서 그저 생존하기 위해 '기생'하며 목숨을 연명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았던 장면 중 하나는 사건이 있은 후 기택이가 아들 기우와 나란히 누워 대화를 하던 클로즈업 씬이었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이 없으면 틀어질 일도 없고 무슨 일이 닥쳐도 아무렇지 않지" 뜻대로 되지 않던 삶에 절망하고 그리하여 생에 달관한 자의 이 처절하도록 슬픈 대사는 '생존'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리하여 어떤 생의 경지를 득한 자의 고독한 독백처럼 느껴졌다.
그 말을 뱉어낼 때 기택의 공허하고 깊은 눈빛은 영화의 톤과 함께 숙연함마저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생의 나락으로 던져진' 오늘날 대한민국 서민들의 뼈아픈 체념과 달관을 대변한 장면처럼도 느껴져 더 울림이 깊었던 듯하다.
재미있었던 대사는 "착해서 부자인 게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 거지" 여기 유럽의 노인들을 보면 그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데,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어있기에 웬만하면 친절하고 밝고 관대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보통 더 조급하고 이기적인 경우를 많이 봤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당장 내 코가 석자이기에 남 챙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서로가 서로를 쳐내게 된다.
그렇게 '내가 살기 위해' 더욱 이기적이 되고 조급 해지는 것. 그것의 극단적인 양상이 바로 기생충이다.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삶. 그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 삶.
영화 <화차>의 여주인공은 끔찍한 살인을 해서라도 '내가 살아야 했기에' 그 아름다운 얼굴로 기꺼이 괴물이 되었었다. 우리의 존재가 그렇다. 우리는 생명의 존엄을 알고 실천하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기생충이라는 단어는 고단한 서민들의 서글픈 '생존 현실'을 응축하여 나타낸 '상징적인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이 주는 뉘앙스는 더욱 애처롭다.
혹자는 영화가 하필 '기생충'이라는 단어를 써서, 영화가 현실을 너무 리얼하게 반영해서, 감독의 시선이 '불편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와 정반대로 영화가 읽힌다.
'진실'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불편하다. 우리의 삶은 매끈하게 포장된 시리즈물도 영화도 아니며 그저 희로애락이 범벅된 한 편의 적나라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눈 앞에 펼쳐지는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것을 있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직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때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보통의 '진실'은 대부분 불편하고 처연하며 가장 아픈 환부가 들어내져야만 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감독이 이토록 처연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건 '냉소'가 아니라 '뜨거운 용기'에 가깝다. 감독이 의도한 건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사회의 '극명한 수직구조'를 직시하게 하고, 그 뒤에 있는 배경, 그들을 '기생충'으로 몰고 간 '진짜 배경'에 눈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봉준호 감독의 이 말은 '세상에 대한 냉소'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본업에 충실한 심플한 생각으로 보인다. 창작자는 그저 '현실을 담는 자'로 작동할 뿐이다. 오히려 그가 영화를 만들면서 '세상을 바꾸려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의 '오만'이지 않을까.
기생충의 울림이 깊은 건, 이 영화가 '어설프게 계몽하거나 위로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봉준호는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가장 차갑게 그것을 담아내었다.
'삶의 진실'이라는 가장 불편한 것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으려.
모처럼 극장에 또 가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 기쁘다. 이번에는 가서 송강호의 아우라를 실컷 느끼고 와야지. 그리고 다시 한번, 봉 감독이 한국의 영화감독이라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