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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Nov 22. 2019

자신을 버리는 자,
'배우' 그 아름다운 이름


브런치를 시작하고, 한때 사랑했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나의 이야기를 해야 했었지요. 그때 쓰다 만 이야기들을 다시 써보려고 합니다. 본글은 2019년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실검에 뜬 '청룡영화제'를 보고, 오늘 영화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나 설레는 '판'. 영화 그리고 영화인들. 더구나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얼굴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배우 송강호. 감독 봉준호. 언제 봐도 기분 좋고 영감을 주는 얼굴들. 
 
 모두의 예상대로  <기생충> 이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연달아 수상하였다.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는 결과였다. 그중 가장 궁금했던 수상 소감은,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조여정 씨의 소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호명되자마자 눈물범벅이 되어 단상으로 올라온 그녀.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아름다웠던 그녀는, 터진 눈물 바람에도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느 순간 연기가, 그냥 제가 '짝사랑' 하는 존재라고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연기를 항상 짝사랑 해왔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사랑은. 어찌 보면 그게 제 원동력이었던 거 같기도 해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짝사랑을 열심히 해야지.... 앞으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 열심히 짝사랑을 해보겠습니다. I'm deadly serious."
 
 마지막은, 영화 기생충에서의 그녀 대사로 재치 있게 마무리. 그녀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보조개가 패인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진짜 배우'의 아우라가 빛을 발하고 있던 그녀의 순간. 특히, 짝사랑에 빗대어 자신의 연기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대목이 좋았다.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다는 그녀.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순간 목이 매어왔다.
 

스스로의 시간을 껴안은 사람의, 눈빛


 예쁘고 상큼한 하이틴 스타로, 그렇고 그런 연예인으로 남을 뻔했던 그녀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은 11년 전,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스크린을 점령했을 때였다. 고인이 된 고 김주혁 배우와 함께 했던 <방자전> 거기서 그녀는 방자와 사랑에 빠지는 춘향으로 분해 아름다운 모습을 맘껏 뽐내었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그녀의 변신은, 수위가 높은 정사신을 소화했다는 이유로, 뭇 남성들에게는 '몽상의 대상'으로서 대중들에게는 '벗은 배우'라는 꼬리표로서 늘 그녀를 따라다녔다. 당연히 그녀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그녀의 벗은 몸 앞에서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실 몸보다는 표정으로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배우였다. 그랬기에 그녀가
 '육탄 배우'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그것은 후속작인 <후궁>으로 이어졌고 극대화되었다. 그렇게 그녀의 아름다운 몸이 소비되는 상황들은,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연기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카로운 매처럼 그녀의 재능을 낚아챈 한 천재 감독에 의해 그녀는, 그녀만의 온전한 숨을 세상에 꽃 피울 수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기생충 안에서의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래서 더 마음이 갔던 거 같다. 그녀의 오늘 수상소감이. 그 눈물이. 배우가 어떻게 인생을 걷고 있으며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그러한 배우를 감독은 어떻게 탄생시키는지에 대한 그들의 서사가. 
 

2019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2010년 '방자전'의 춘향


 이십 대의 한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영화배우였다. 정말 영화처럼 만나서 영화처럼 친해진 친구였다. 친구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배우였고, 남들처럼 '화려한 연예인'이 아닌 소속사도 매니저도 없던 그야말로 앞길이 막막한 '연기자'였다. 
가난한 배우였던 친구는 내게서 옷을 빌려가 촬영장에 가져가기도 했고, 큰돈은 아니었지만 내게 돈을 꿔가기도 했다. 나는 그 친구가 초대받은 크고 작은 영화 행사들에 동행을 하기도 했는데, 그 덕분에 당시 나는 소위 '충무로 사람들'이라는 현장 영화인들을 사석에서 만나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한창 영화에 빠져있던 시절이었기에, 그러한 만남의 경험들은 당시의 내게 완벽한 모험처럼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했었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배우들을 가까이서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느낌은, 

배우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이었다.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내면을 말하는 것이다. 섬세한 감정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들. 모든 것을 흡수하고, 감정을 받아들이고, 감성의 언어로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 안에서 필터링한 후 재창조하여 표현해내는 힘. 그것은 '매우 높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일이기에. 
 
 특히 '좋은 배우'의 눈빛과 얼굴은 늘 묵직한 존재감과 함께 투명함을 건네주었는데,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서는 늘 바람 냄새가 났고 자유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하였다. 그때 알았다.
 
그들의 뛰어난 창조적 재능 다름 아닌그들의 '끊임없이 비워내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송강호. 봉준호. 내가 좋아하는 이름


 배우란 '자신을 버리는 연습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끝없는 변신 속을 살아내는 사람들이고, 그 변신은,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짓지 않았을 때에만, 그렇게 철저하게 버렸을 때에만 채워지는 모습이다. 배우란, 그러한 생을 살아가는 자들을 말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버리는 것. 그래서일까.
좋은 배우의 얼굴은 도인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그것이야말로 '도'를 닦는 자의 자세이기에.
 
 그래서 '좋은 배우' 보면 기분이 좋다행복하다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은 마음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유를 뿜어내고 있기에. 
 
 조여정 씨의 수상 소감 도중 잠깐 비춰준 봉준호 감독의 눈빛. 역시나 내가 좋아한 눈빛 그대로였다.
깊고 따뜻한, 연민 가득한 소년의 눈빛.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의 꽃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 여배우에 대한 경이로움과 존경을 담은 눈빛.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눈빛. 그의 감독상 수상 소감 역시 그답게 편안하고 담백하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송강호의 <기생충작품상 소감. "우리도 이런 영화를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는 큰 자긍심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좋다. 

오늘, 그러한 배우들,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봉준호 감독의 그 눈빛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배우 '조여정' 수상소감 

영상 출처 : https://tuney.kr/xZP2Z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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