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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Dec 14. 2020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 시장,
같이 구경 하실래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든 그곳은, 가장 정직한 땀과 가장 투명한 미소를 가진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향기로 존재하는 사람들. 땀 흘려 일군 먹거리를 세상에 내어 놓는 사람들. 매끈하지 않은 그 투박함을 사랑한다. 농부들의 흙 묻은 거친 손을 사랑한다. 대지의 자비로움 그대로인 그 순박한 얼굴을 사랑한다. 프랑스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재래시장이다. 그곳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자. (본 글은 자유롭게 시장을 오갔던 1년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프랑스에서 장을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3군데로 나뉜다. 하나는 까르푸와 같은 대형 마트, 다른 하나는 모노프리 같은 동네형 종합슈퍼마켓, 마지막은 요일별 주말별로 열리는 재래시장이 그것이다.


 대형 마트는 종류가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사람에 치어 그 큰 곳을 헤집고 다녀야 하고 계산대에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줄을 서 있어야 한다는 매우 큰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차를 끌고 멀리까지 가야 한다. 귀찮다. 더구나 사람 북적이는 곳도 싫어하기에 잘 가지 않는다.

 나는 주로 동네에 있는 슈퍼마켓과 역시나 코 앞에 있는 작은 상점들을 애용한다. 생필품들부터 옷가지들, 먹거리들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기에 대부분의 공산품은 거기에서 사고, 고기는 정육점에서, 치즈는 치즈가게에서 산다. 단 한가지 예외는 신선도가 생명인 채소와 과일이다. 채소와 과일만은 언제나 정기적으로 열리는 재래시장에서 구입한다.

 프랑스의 시장은 한국처럼 상설 가게들이 있어 매일 문을 여는 게 아닌, 각 요일별로 특정한 구역에서 오전에만 장이 선다. 그 중에 가장 크게 열리는 시장은 토요일 아침 시장, 그리고 화요일이나 수요일 아침 시장이다. 주로 동네의 큰 광장에서 꼭두 새벽부터 장이 열리고 점심이면 모두 철수한다.

 프랑스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생산자 직거래로 신선한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소 과일 치즈 빵 정육 생선 그리고 반찬가게에 이르기까지, 생산자가 직접 흙 묻은 손으로 물건을 판매하기에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볼 수 있고 어디보다 활기가 넘친다.

 시장에서는, 잔주름 굵게 패인 농부의 거친 얼굴을 볼 수 있고, 앞치마를 두른 배불뚝이 농장 아저씨를 볼 수 있고, 직접 짠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 가져온 시골 아낙의 발그레한 미소를 볼 수 있다. 이성과 논리라는 '딱딱한 지식인'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땅과 하나되어 살아 온 사람들의 거침없는 기운이 여기저기서 넘실대는 곳. 가장 순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땅에서 나온 것들을 정직하게 매만지는 곳. 

 프랑스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 그래서 기운을 받아서 오는 곳.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매우 흐리고 추웠던 날이었지만, 오랜만에 시장에 나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 겨울시장 풍경을 올려 본다. 



겨울의 최강자인 늙은 호박 그리고 저 꽃같이 생긴 것은 '악티쇼'라 불리는 따뜻한 지중해성 식물이다. 오래 삶아낸 후 껍질을 하나씩 따서 그 안에 있는 부드러운 속살을 올리브유와 식초를 섞은 소스에 찍어 먹는다. 


너무 예쁜 형형색깔 당근. 노란색 당근은 아무래도 좀 밍밍한 무 맛에 가깝지만 자주빛 당근은 빛깔처럼 맛도 더 색깔있다. 특히 떡국을 끓일 때 넣으면 떡국색이 연보라빛으로 물들어 정말 예쁘다.


다양한 브로콜리들. 노랗게 변색되지 않은 신선한 것을 잘 골라야 한다. 역시나 너무 예쁜 자주빛 브로컬리. 하얀 커리플라워는 프랑스에서 보통 '베샤멜 소스'와 버무려 그라탕을 많이 해서 먹는다.


낡은 모자를 쓴 채로 그 거친 손으로 못생긴 애들만 파는 농부 할아버지. 그의 밭에서 나온 저 예쁜 무들. 흙먼지 그대로 않은 저 신선함과 정직함이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위로를 건네주는지 모른다.


프랑스의 무지막지한 대파. 여기 사람들은 대파든 열무든 홍당무든, 위에 달려있는 푸른 잎사귀를 먹지 않고 버린다. 거기에 비타민이 얼마나 풍부한데! 그래서 저렇게 윗대가 잘라져 있는 거다. 물론 안 그런 것도 있다. 살 때 '잘라줄까요?'라고 물으면 난 고개를 크게 가로저으며 "아뇨 아뇨! 그대로 주세요" 한다. 옆에는 양송이 버섯. 신선한 버섯 그대로 샐러드를 해먹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버섯전을 즐겨 해먹는다.


너무나 앙증맞은 작은 호박들. 조롱박 표주박 같은 이 호박들을 사면 아까워서 어떻게 까서 먹을까 싶다. 그냥 장식으로 놔둔 채 두고두고 보고싶을 거 같은 아이들.


프랑스에는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고추가 없지만, 아쉬운대로 아랍 상인들에게서 고추를 살 수 있는 게 어딘가 싶다. 오른쪽 밑에는 돼지 감자, 오른쪽 위에는 껍질 벗겨 샐러드로 먹는 검은 무, 그리고 당근들.


프랑스에서 아쉬운 건 마늘이 정말 비싸다는 것이다. 얘들은 먹을 일이 별로 없기에 괜찮다지만, 어디 한국인이 마늘 없이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있던가. 그래서 집에 마늘이 떨어지면, 꼭 쌀이 떨어진 것처럼 허전하다. 꼭 들어가야할 감칠맛을 낼 수 없다는 아쉬움. 그 유명한 달팽이 요리에도 다진마늘이 들어간다.


요건 비트(근대)다. 매우 푸르고 거친 입사귀와 식이섬유로 뭉쳐있는 하얀 줄기. 프랑스인들은 저걸 삶아서 파이를 만들어 먹거나 설탕을 넣고 졸여 타르트 디저트를 해먹는다. 사포닌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건강에도 좋은 채소. 저 옹골찬 꼴처럼 우리 입맛에 매우 잘 맞는다. 


그리고 호두의 계절. 껍질째 있는 호두를 생산자가 직접 와서 판다. 좀 더 알이 굵은 것과 작은 것. 그리고 할아버지가 직접 짠 호두기름. 기침을 할 때 호두기름을 식 후 큰 숟가락으로 한 수저씩 먹으면 좋다.


이것은 작은 배추 종류로 '앙디브'라는 것이다. 저렇게 멋드러진 뿌리에서 올라오는 녀석들이다. 배추 속살처럼 연하지만 맛은 쌉쌀하다. 그 쓴 맛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조리할 때 설탕을 많이 넣어서 요리한다. 생으로 쓱쓱 썰어서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넣은 소스로 샐러드 해 먹으면 아주 상큼하고 맛있다.


온갖 올리브들은 언제나 아랍 상인들이 판매한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신선한 올리브로 금방 만들어진 것들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특히 밑에 왼쪽 보라빛 도는 저 아이와 그 위에 초록빛 도는 베이직 맛을 좋아한다.


그리고 밑에는 약간 혐오일 수 있으나... 구경시켜드리려 일부러 찍었다. 무엇일까 맞춰보시기 바란다.

프랑스에서 먹을 수 있다는 '동물 혀'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아기양의 혀, 소의 혀, 송아지 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먹을 생각이 전혀 없다. 


좋아하는 수산물 코너. 문어도 보이고 고등어도 보이고 자연산 오징어도 있고 밑에 송어도 보인다. 생새우는 왼쪽 위처럼 회색빛이 돌고, 오렌지빛 새우는 살짝 익힌 것이라 그대로 먹는다. 밑에는 왕새우.


프랑스인들은 생선을 먹을 때 다 저렇게 손질해놓은 것을 사다가 주로 오븐에 쪄먹기 때문에 생선가게에서 아예 이렇게 '포를 떠서' 준비해놓고 판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이 물고기를 그릴 때 '하얀 직사각형 모양'으로 그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여기는 주로 '고기만 고기만' 먹지, 사실 우리처럼 생선을 많이 먹지 않기에 생선가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사 온 아이들 모음. 못생긴 단호박 두 개, 고구마 두 개, 잎이 싱싱한 대파 몇 대, 초록 배추, 무와 샐러리 중간 맛인 하얀 빠네 두 개, 시불렛 한 단, 호두 한 자루, 단감, 귤, 오징어.

 고구마는 닭갈비에 넣어 먹고, 단호박과 빠네는 숲을 해서 먹고, 배추는 삶아서 된장무침 해 먹고, 연한 속잎은 배추전을 해서 먹을 거다. 오징어는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에 다진 마늘을 넣어 볶은 후 오징어 튀김을 곁들여 먹거나 칼칼한 오징어 볶음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이 떨어져서 사러 가야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침부터 커다란 까치 한 마리가 눈 앞 발코니에 사뿐히 내려 앉아 한참을 머물더니 발코니 안 화단으로 들어와 몇 발자욱을 걷는다. 까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이 벅찬 기분. 차를 마시다 말고는 창틀에 앉아 있는 또 다른 까치와 눈이 마주쳤다. 어떤 좋은 일이 나를 기다리길래?
  

뿌옇게 안개 낀 강의 풍경이 아름답다. 단호박 숲은 이미 끓여 놓았으니 저녁에 먹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오늘도, 설레는 겨울 아침을 맞이한다. 



 봉쇄 중에도 여전히 시장은 열려있지만 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장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얼굴들. 못생긴 감자 파는 주름이 멋진 할아버지, 갈 때마다 수줍게 미소짓던 채소 파는 아저씨, 호호 아줌마처럼 웃고 계시는 사과 파는 아줌마... 언젠가 따뜻한 날 그 분들 계신 그곳에 가면, 조용히 미소지으며 인사하리라.

반갑다고. 봄이 왔다고.
그 자리에 있어주어 고맙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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