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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an 15. 2021

봉준호라는 이름이
'고유성'을 불러낼 때

  

 기생충이 깐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직후 브런치에 올린 글이 있었다. 한때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주체할 수 없는 환희가 차올라 봉준호 감독에 대한 단상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그 글은 16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다음 메인 영화란에 이틀간 걸려있었던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한지 2주가 되지 않은 때였다. 새해, 그 글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자한다. 



 봉준호 감독이 드디어 일을 냈다. 아니, 이제야 그의 진가를 인정받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72회를 맞는 칸영화제는 최고의 영예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권위로 똘똘 뭉친 그곳에서!


 '깐느'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그곳은 서방의 문화 기득권들의 안방과 같은 곳이다. 그들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존재하며 웬만해서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는 9년 전 이창동 감독이 <시> 를 들고 그곳을  찾았을 때 충분히 목격하였다. 
 
 여우주연상은 물론 황금종려상까지 가능했던 그 찬란한 영화에게 돌아온 결과는 각본상 뿐이었다. 당시 여주주연상을 수상했던 프랑스 배우 쥴리엣 비노시가 시상식 직후 윤정희에게 "미안하다"고 한 일화는 잘 알려져있다. 그런 곳에서 이룬 성과이기에 봉감독의 수상은 그 자체로도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자 동시에 이번 영화가 독보적으로 훌륭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2020년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쓴 후 오스카 트로피와 함께

 

 처음 <기생충>이 초대받았다고 했을 때 조심스레 송강호의 남주주연상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쾌거가 날아들었다. 더구나 봉준호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실시간으로 영상을 찾아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봉감독은 "실감 나지 않는다"며 특유의 소년 같은 미소로 트로피의 종려나뭇잎을 장난스레 만지고 있었다. 놀라긴 했어도 늘 그랬듯 담담한 얼굴. 그의 눈빛은 이 순간에도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봉준호 감독의 그 눈빛을 좋아했다. 누구보다 예리하지만 고요하게 관조하는 그 눈빛을.


 그의 눈빛은 보자마자 천재성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매우 드문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직관이었고 자기 자신과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의 단단함이었다. 투명함이 흐르는 담백함은 그의 '소년 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식이었다. 

 나이 50 먹은 남자가 그런 눈빛을 가지는 건 쉽지 않다. 대부분은 세월과 함께 변질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꼰대로 전락하기 쉬운 한국 사회에서 그 정도 명성이라면 어느 정도 때가 묻을 법도 한데 그는 꾸준히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게 그의 성정이기 때문이다.


담백한 천재. 그를 보며 늘 들던 생각이었다 (사진: tdg.ch)


 모든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색깔이라 불리는 그의 성정이 투영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반드시 그가 머물고 있는 '마음의 상태'가 녹아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뛰어난 테크니션이라도 어떤 마음의 상태로 그 기술을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결은 달라진다.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창작물에 그대로 그 병이 담아진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병든' 영화와 노래들 예술품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세상은 예술품에 담긴 병증을 바로 인식하기보다 그저 뛰어난 테크닉에 열광하기를 선호한다. 그렇기에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뛰어난 예술가'라는 이유로 추앙받기도 하고 다시 그 병든 권력을 행사하게도 된다.
 
 너무도 흔한 예술계의 이런 광경들 속에서 봉준호라는 이름은 단연 더 빛이 났다. 뛰어난 테크니션인 그는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은채 소년의 눈빛으로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기에.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그렇기에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를 처음부터 '알아본 것'이다. 개성 강한 한국 영화계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두 이름. 세월 앞에 또는 이름의 무게 앞에 변질되지 않은 채 자신의 성정을 지켜온 두 사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 사진. 비범함과 고요함


그렇기에 두 천재의 만남은 언제든 세상을 유쾌하게 놀래킬 준비가 되어있다. 어제처럼. 16년 전 그날처럼. 

 
 <살인의 추억> 이라는 영화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들에게 어제의 결과는 그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6년 전 그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 소위 영화광들은 그야말로 그에게 열광했었다. 
그의 영화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독창적인 스토리가 있었고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가 있었으며 언제나 그 핵심에는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는 훌륭한 메시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각 인물들은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던 고유성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었다. 숨이 만져질 만큼 촘촘하게 녹아있는 그들의 연기는 디테일하였으나 자연스러웠고 그랬기에 더욱 영화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끌어주었다.


 그랬다. 그의 영화 안에서 모든 캐릭터들은 누구 하나 없어서는 안 될 만큼 모두가 그 세계 안에서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의 세계'는 작은 요소들 하나까지 저마다의 우주를 완성해야만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삶을 담는 최고의 도구인 영화로 그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한국 영화사의 전무후무한 마스터피스 <살인의 추억>

 

 그의 수상은, 천재성이 보편적인 이야기와 만났을 때 얼마나 강력한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결과이다. 그 이야기에는 언제나 '고유한 개인의 삶'이 녹아있다. 그리고 그는 고유성을 완벽하게 고증해내는 최고의 기술자이다. 독보적으로 훌륭한 것, 사람들의 심장을 때리는 감동은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가장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때. 그렇게 고유하게 존재할 때. '나'의 이야기는 '세상'의 이야기이며 '나'를 말하는 것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기에.
 
 세계를 강타하고있는 한국 영화들은 영어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국의 배우들이 한국말로 한국의 사회 속 군상들을 한국의 정서로 녹여낸 것들이다. 그저 
한국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얘기한 것 뿐이다.
이것은 BTS가 일궈낸 것과 다르지 않다. BTS 역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모국어로. 내가 가장 잘 아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감동의 열쇠는 언제나 '고유성'에 있다.  

 봉준호 감독이 다른 것이 아닌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계속 이렇게 최고의 영화 기술자로 살아주기를. 그리고 개인적으로 송강호 배우가 언젠가 저 자리에서 꼭 영광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더위가 시작된 늦은 봄, <기생충>의 개봉일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하나 추가되었다.  



 칸영화제 수상 직후 프랑스에서 개봉한 기생충은, 예술영화 전용극장이 아닌 일반 극장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한 첫 한국영화였다. 평일 저녁에 갔음에도 비어있는 좌석이 없어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의 보통 극장에서 상영될 봉준호 감독의 다음 영화가, 또다른 한국 영화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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