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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Sep 13. 2024

시인으로, 등단하다.

등단 시인, 김세현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이 심플한 한 마디를 한참 바라보았다. 어쩌면 늦은 고백 같기도 한 미소가 담담히 번졌다. 이런 타이틀을 갖는다는 건 나의 것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세상이 알아주는 것은 사실 내게 중요하지 않았기에. 그저 나를 쓰는 것이 좋았다. 나의 숨을 하얀 종이 위에 뱉어내는 것이 좋았다. 나의 외로움을 나의 슬픔을 그려내는 하얀 여백 앞의 시간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속의 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기에. ‘진짜 나’를 만나던 그 순간에만 나는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내게 당연했던 이름을 이제야 갖게 된 것이기도 했다. 내 맘 속의 나는 언제나 ‘시인’이었기에. 시를 쓰는 것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이십 대의 한 복판, 나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어떤 뜨거운 숨을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우주만이 아는 비밀 언어였고 내 가장 깊은 곳의 핵심에 닿아있던 것이었다. 세상은 그것을 ‘시’라고 불렀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던 배우님께 인상적인 한 마디를 들었다. “너는 계속 시를 써라” 그때 내가 계속 시를 썼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들꽃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던 스물 다섯, 시는 나의 가장 내밀한 영혼과 접촉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나는 오늘을 견디기 위해 나의 좌절을 이겨내기 위해 시를 썼다.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노곤하고 서러운 밤 내 마음을 뉘일 곳은 거기였기에. 그 시간들은 나만의 우주를 유영하며 가장 깊은 바다 속 별을 길러내는 시간들이었기에. 그때 내게 시가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웅크려 있던 소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은 ‘기다리는 시간’이며, 때가 왔을 때 ‘삶의 비밀’ 그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앎’은 시간의 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기에. 16년 전 한국을 떠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이 있었다. 아득한 시간에 나를 넘겨주고서야 비로소 찾아온 이름. 내게는 집 같은 그리움의 이름. “시 그리고 시인”. 삶은 아름답다. 진실로.


2022년 10월 프랑스 뤼미에르 영화제에 초대되어 오신 이창동 감독님을 10년만에 뵈었다


 오래전 써놓았던 시들을 꺼내 응모했던  전문잡지의 신인문학상에 당선이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언제나 내게는 당연했던 이름을 이제야 갖게되었다. "등단 시인" 시상식에 참여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한국에   없기에 가족에게 대리수상을 부탁해놓았다. 상패와 작가증  받아오라 하였다.

  모든 시간들을 건너, 오늘의 선물을 주신 하늘에, 내게  모든 경험들과 고통과 인연에, 20 인연에 특별한 말이 필요 없던, 10년만에 만난 나를 축복해주신 감독님께, 나의 스승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작은 기쁨을 향해 한껏 미소지어본다. 이제 나도 혼잣말이 아닌 모두에게 말할  있게 되었기에.
 
 “시를 씁니다. 시인입니다”  




삶의 비밀

                                                              김세현
                                                              

아름다움이란

삶이 지닌

추락한 나침반 같은 암울함 속에서도

한줄기 빛이 함께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 가지 빛깔만으로 빛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은

무너진 어제를

부서진 오늘을 끌어안을 시간

고요한 걸음과 침묵의 언어가

필요한 시간

기다리는 시간     


문 밖의 새소리에 깨어

때가 왔을 때.....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햇살에 취해있는

목장의 소처럼     

어깨에 힘이 빠지며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네 삶 속에 고요하게 흐르는

아름다움의 강물에 대하여     


비로소 당신은

말할 수 있다     


삶의 비밀을
                     


- 2000년 5월, 별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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