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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Oct 10. 2019

불행의 단서를 맞닥뜨리다.
고통이 피어난 자리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32화


 모든 고통은 '자유롭지 못함'에 대한 다양한 상황의 표현이며, 내 고통의 뿌리는 거기로부터 왔음을 알게 된 후로, 내가 자유롭지 못했던 건, 내가 이 땅에서 남편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자각이 올라왔다. 

진정한 자유는 어떤 것에도 나 자신을 의탁하지 않고 혼자 설 수 있을 때에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거기에는 '물질적 자립'이 함께 포함된다는 것을. '정신적 자립'이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물질세계에서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자신을 남편이나 시댁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호텔 청소를 하더라도 내 손으로 돈을 벌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한국에 오기 전, 남편 몰래 알아봤었던 일자리에서 운 좋게 출근하라는 대답을 받았었다.
글 쓰는 것 이외에 가장 즐거운 일인 요리로 나는 막 정식 요리사로 취직을 해놓은 상태였다. 이 땅에 온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직장이 생긴 것이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한다는 나의 간절함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하지만 내 손의 상태는 요리를 업으로 삼기에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마다 발발했던 손가락 관절 변형 증상이 겨울 동안 악화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마디들이 튀어나오고 굴절되고 심지어 형태가 꺾여버린 손가락이 생겨났다.
가늘고 예쁜 손가락으로 부러움을 샀던 내 손은 이제 울퉁불퉁 못생긴 손이 되어 내 마음이 할퀴고 간 자리를 대변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겨울 동안  몸에 새겨진 분노의 흔적들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융의 드넓은 정신 안에서 확장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비로소 내 불행의 단서들을 찾아줄 실체들에 근접해가고 있었기에.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데려간 곳, 내 삶의 과제를 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처럼 여겨졌던 융의 저서들을 다시 탐독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멘, 그대는 최초의 지배자이시네....아멘, 그대는 최초와 종말이시네" - 체게융이 직접 그린 무의식을 표현한 그림들 'Red Book'


 오래전부터 나를 매료시켰던 융의 개념들이 새로운 숨결로 살아나 다시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융이 말하는 정신의 핵심 요소가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재발견은, 잃어버린 고대의 지혜를 찾은 듯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하였다.

 이성과 직관. 문명인과 자연인. 서양과 동양.이라는 '상극'으로만 막연히 이해했던 그 '전쟁'이, 나만의 어떤 개인적인 문제들이 아닌, 인간 정신이 보편적으로 지닌 
'대극의 충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에게 그동안 왜 융이 그토록 특별하게 다가왔었는지가 가슴으로 이해되었다.

 "존재는, 미덕, 이성, 지성, 친절, 의식과 같은 성질과 그것들의 대극을 지니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이 우리 정신 속에서 완전한 역설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인 현실이다. 가장 극단적이고 위협적인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인간은 부서지지 않으며, 존재의 짐을 받아들여야만 '신의 형상'이 그의 안에서 드러난다"

 "결국 당신의 본성에서 샘솟는 대극들을 인내심 있게 견디는 것 말고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당신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서로 양립할  없는 물질을 고통의 불길 속에서 녹인다. 이를 통해 바꿀 수 없는 고정된 형태를 창조한다는 삶의 목표를 이루는 당신은자신 안에서 자신
 싸우는 충돌  자체이다둘을 화해시키는 세 번째 요소가 자리 잡을 때까지 우리는 대극들의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고문을 받아야 한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장미꽃밭에 누워 정신의 평화와 고요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네. 인간은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대극들의 치열한 싸움을 피할  없다네"

"바다 괴물과의 싸움은 무의식의 손아귀로부터 자아의식을 해방시키려는 시도를 대변한다"  - 체게융, 글 그림


 그의 빛나는 정신은 연꽃 위에 둥둥 떠다니던 붓다의 말들을 구체적인 인간의 언어로 가져와 내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융은
 나에게, '하늘 위에 떠있던마음을 ' 위의 언어로설득시켜 끌고 내려온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 프랑스라는 '대립의 요소'가 내 안의 '대극'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그것들이 그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내 안에 지닌 '내면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그렇게 융의 숨결을 통해 비로소 나는... 딱딱하고 차가운 땅일지라도 나는 계속  위에  있어야만 하며이대로 다시 도망간다면 나는 영영  삶의 과제들을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쓸쓸한 앎'은 나를 외로움의 끝으로 밀어 넣었다. 내 존재의 짐을 견딘 채 나는 이 무거운 삶의 과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 이대로 또다시 계속되는 생을 살아내야 한다는 막막함이 나를 덮쳐왔다. 나의 이 마음을 뉘이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내 마음속의 자궁.   
아무도 없는 오후 절에 도착했을 때 고요히 서있는 탑들을 보자마자 고향에 온 듯 모든 긴장이 풀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온 마음을 다해 빌었다. '모든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되찾게 해 주소서' 그렇게 나는 탑 밑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며칠  모든 두려움을 한 번에 소멸시켜버린 순간이 나를 찾아왔다.

 

어두운 심연의 끝... 제 생명의 몫을 다한 태양이 삼켜졌다


 남편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나는 남편이 내 편지에 '응답' 해주는 거라 생각했었다. 한국에 오기 전 남편에게 긴 편지를 전해주고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겨져있는 문자는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지셨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상태가 어떠냐고 물을 참이었다. 남편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
아버지 돌아가셨어....."

 

얼어붙어있던 심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내가 뱉어내고 온 모든 말들과 마음들이 하찮은 모래알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눈물 범벅이었던 나는 남편에게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미안해 여보... 내가 미안해..." 남편도 한국말로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우리는 모든 걸 씻어주는 눈물과 함께 한 마음으로 연결돼있었다. 


 순간, 남편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남편이
  마음을 비로소 이해해주었거나 나에게 공감해주어서가 아니었다그저  사람이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기에소중한 것이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늘을 함께하는 사람이기에  자체로 소중한 것이었다


 아버님이 이거 알려주시려고 서둘러 가셨구나 생각하니 더 가슴이 미어졌다. 언제나 말없이 미소 지어주시던 아버님께 살가운 며느리 노릇 한번 못해본 나...


 
내가 아버님께 드릴  있는 마지막 마음은 이제, 하나밖에 없었다
.





* 메인그림 : '원형'을 이미지화한 체게융이 그린 최초의 '만다라' 그림

* 인용된 융의 말 출처 : '체게융 전집 11권' p.417 '체게융 서간집 2권' p.435-346, '체게융 서간집 1권'P.375, '체게융 서간집 2권' p.242 (원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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