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편이다. 말보다 글이 익숙하다. 그 덕에 면접이 곤혹스럽다. 질문을 받으면 사용된 핵심 단어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되새김질한다. 단어가 초원에서 울타리 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울타리 안에 둔 양과 바깥에서 풀을 뜯는 양의 생김새를 살핀다. 면접관과 내가 바라보는 양은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다를 수밖에 없다. 이곳에는 내가 기르는 양과 면접관이 기르는 양이 있다. 번갈아 쓰다듬는다. 어느새 나는 초원에서 빠져나와 의자에 앉아 있다. 양털의 감촉을 바탕으로 어디서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말할지 정리한다. 단어를 선택한다. 조사는 무엇을 데려올지 하나씩 따져본다. 그것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편집한다. 기어코 첫 문장을 머릿속으로 짰다면 내뱉었을 때 어색한 문어체가 아닌지 판별한다. 첩첩산중이다. 첫 면접에서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으나 60초가량 입을 떼지 못했다.
낯선 자리에 앉아 낯선 사람을 마주하기. 한정된 시간 안에 내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검열하고 입증하기. 이 자리는 불편을 넘어 냉엄하다. 좋은 인재를 오래 채용하고 싶은 고용주의 입장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일하고 또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싶은 피고용자의 입장. 둘의 기회비용을 고려해 초면에 서로를 확인해야만 하는 자리. 더 차가운 말을 고르면 실시간으로 가치를 평가하고 값을 협상하는 상품이 되는 자리. 그곳에서,
‘우리 회사가 반드시 당신을 채용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라는 질문은 고용주 입장에서 굉장히 경제적이다. 피고용자 입장인 나에게는 서슬 퍼런 날이 되어 가슴팍 가까이 훅 들어온다. 나를 반드시 뽑아야만 하는 이유? ‘반드시’라는 단어를 쓸 만큼의 간절함, 그런 게 있을 리가. 그 단어 속에 있는 의욕은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대부분 부스러기가 된다. 게다가 나는 어떤 회사에 반드시 들어가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니까.
난생처음 듣는 외국어 같았지만 얼추 대답했다. 우리 브랜드와 당신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지 않을까 싶어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둔 덕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말이 맴돌았다. 당신을 꼭 뽑아야만 하는 이유. 그 말은 순화시키면 피고용인으로서의 내가 어떤 가치나 매력이 있는지 얘기해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더 순화시키면 ‘좋은 사람 만나고 싶어요’. 그렇게 보니 외국어에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모국의 방언이 되었다.
사실을 토대로 입을 떼면 됐을 것 같다. 채용하는 직무에 따라 내가 어떤 능력치를 가졌는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채워나갈 자신이 있는지. 그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경험은 있는지. 그리고 나만이 가진 차별점이 무엇인지. 그 차별점이 당사에 어떤 이득이 될지.
타지에서 서울 쪽으로 흘러들어와 밥벌이를 이어가야 하는 긴장. 서류제출과 면접. 반복되는 무응답이나 탈락. 그런 상황에서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내 가치를 알아주는 곳이 있을 거야’하고 나를 지켜나가기는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면접 연락이 온 것은 적어도 관심은 있다는 뜻일 텐데 현장에서 풀이 조금 꺾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하염없이 작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남들도 나를 알아보기 힘들다. 고용시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면 적어도 내가 쥐고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내 패를 알고 있는 거, 그 정도면 기본은 하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밥벌이를 위한 면접은 여럿 있을 테다. 현장에서 잘 대답할 수 있는 질문과 그렇지 못한 질문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답하지 못한 질문은 집으로 돌아와 국수면 삶듯 찬찬히 풀어보면 될 일이다. 그렇게 다음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 늘지 않을까. 차츰 밥벌이의 언어에 익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