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옮기는 일
‘나는 이 그림이 좋아’.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만지며 말했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민음사 판 『노르웨이의 숲』 표지 그림을 처음 본 지 10년 가까이 지났지요. 그때의 나는 속으로 ‘당신은 고상한 안목이 있구나’하며 끄덕끄덕 받아들였을 뿐. 그림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의 작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며 그가 쓴 책도 읽어보았습니다. 어느새 나는 그 그림 앞에 서 있었죠.
그 사람의 취향이 나에게 옮겨온 데에 어떤 이유가 적확한지 모르겠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봄날의 곰’의 실현인 친구가 있기에 그 그림마저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그 그림을 좋아할 법한 사람으로 자라온 걸까요. 어쩌면 그 서점에서부터 머리는 모르게 몸이 좋아하리라 명했을 수도 있겠지요. 서서히 사라지는 파문처럼 불분명합니다. 엇비슷한 말로는, 서서히 번지는 녹물의 붓질처럼 ‘나도 그 그림이 좋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