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식당에 부쳤던 편지
마음을 표하고 싶은데 대학생이라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부족하고 짧은 글만이라도 써봅니다.
안도현 시인은 타향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아들에게 부친 편지의 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대학생이 된 스무 살 민석이에게
서울에서 밥은 잘 먹고 지내느냐? 밥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곁에 없다고 끼니를 쉽게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내가 너만 할 때는 정말 돈도 밥도 없어서 가끔은 굶을 때도 있었다. 나는 밥이 그리워 밥을 기다렸지. 너는 밥이 너를 기다리지 않도록 해라. 밥에 대해 꼭 예의를 갖추어라.
안도현 .『그런 일』. 2016 . 117p
저는 굶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배고픔을 느낄 수 없는 세대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끼니를 거르는 거짓 배고픔이야 알지만, 돈이 없고 추운 때의 진짜 배고픈 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때에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일이 사람으로서 죄스럽게 여겨질 때, 내가 앉은 밥상에 따뜻한 밥과 국이 놓이는 일이 누군가에게 죄송스레 여겨질 때는 몇 있었습니다. 그런 일로 하여금 밥을 먹지 않고서는 슬플 수도 없다는 걸 압니다. 그만큼 살면서 허기를 당해낼 일이 몇 없을 거라 짐작합니다.
배가 작아 간혹 찬을 남긴 일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매번 맛있게 먹었습니다. 동양고전 중에서 밥을 먹는 일은 천리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먹는 일은 인욕이라 했는데, 의도치 않게 인욕까지 채웠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배 굶주리지 않고 책 읽고 글 쓸 수 있었습니다. 올해 1월 말일에는 전주의 작은 서점에서 청년 창작자를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 작품 발표회를 잘 마쳤습니다. 전주에 내려가기 전 내어주신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간 덕분입니다. 작년 명절에도 음식 내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학생이라고 얼마 안 되는 돈에 귀한 음식을 내어주신 마음은 무엇이든 부족하고 설명할 수 없어 무어라 적지 못합니다. 그 마음을 잘 간직해두고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마주할 때, 시를 쓸 때 떠올리겠습니다.
제 고향인 부산에서 요리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간만에 내려가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 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친구한테는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음식을 내어줄 손이 있는데 내 손은 쓸모없는 시를 쓸 뿐이구나,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줄 수 있는 손은 참으로 귀한 손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귀한 손을 갖고 있진 않지만 내어주신 음식 헛되지 않게 읽고 쓰는 데 손을 부지런히 하려 합니다. 덕분에 밥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