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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Feb 18. 2023

밥에 대한 예의

빚진 식당에 부쳤던 편지




   마음을 표하고 싶은데 대학생이라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부족하고 짧은 글만이라도 써봅니다.

    

   안도현 시인은 타향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아들에게 부친 편지의 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대학생이 된 스무 살 민석이에게


   서울에서 밥은 잘 먹고 지내느냐? 밥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곁에 없다고 끼니를 쉽게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내가 너만 할 때는 정말 돈도 밥도 없어서 가끔은 굶을 때도 있었다. 나는 밥이 그리워 밥을 기다렸지. 너는 밥이 너를 기다리지 않도록 해라. 밥에 대해 꼭 예의를 갖추어라.



                                                                                                안도현 .『그런 일』. 2016 . 117p








   저는 굶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배고픔을 느낄 수 없는 세대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끼니를 거르는 거짓 배고픔이야 알지만, 돈이 없고 추운 때의 진짜 배고픈 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때에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일이 사람으로서 죄스럽게 여겨질 때, 내가 앉은 밥상에 따뜻한 밥과 국이 놓이는 일이 누군가에게 죄송스레 여겨질 때는 몇 있었습니다. 그런 일로 하여금 밥을 먹지 않고서는 슬플 수도 없다는 걸 압니다. 그만큼 살면서 허기를 당해낼 일이 몇 없을 거라 짐작합니다.

 

   배가 작아 간혹 찬을 남긴 일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매번 맛있게 먹었습니다. 동양고전 중에서 밥을 먹는 일은 천리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먹는 일은 인욕이라 했는데, 의도치 않게 인욕까지 채웠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배 굶주리지 않고 책 읽고 글 쓸 수 있었습니다. 올해 1월 말일에는 전주의 작은 서점에서 청년 창작자를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 작품 발표회를 잘 마쳤습니다. 전주에 내려가기 전 내어주신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간 덕분입니다. 작년 명절에도 음식 내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학생이라고 얼마 안 되는 돈에 귀한 음식을 내어주신 마음은 무엇이든 부족하고 설명할 수 없어 무어라 적지 못합니다. 그 마음을 잘 간직해두고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마주할 때, 시를 쓸 때 떠올리겠습니다.

   

    고향인 부산에서 요리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간만에 내려가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친구한테는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음식을 내어줄 손이 있는데  손은 쓸모없는 시를  뿐이구나,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줄  있는 손은 참으로 귀한 손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귀한 손을 갖고 있진 않지만 내어주신 음식 헛되지 않게 읽고 쓰는 데 손을 부지런히 하려 합니다. 덕분에 밥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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