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조사를 한다면서 며칠 전 통장님이 오셨다. 벨을 눌러 나가보니 통장이라고 소개를 하신 후 이름을 확인하고 사인을 하라고 하셨다. 실거주 조사라는 걸 원래 했는데 그동안은 낮에 집에 없어서 몰랐는지 아니면 올해 처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것도 하는구나 싶었다. 처음 보는 통장님이란 분은 낮에 집에 있는 나에게 주부냐고 물었다.
나는 주부인가?
난 그동안 직업을 쓸 일이 생기면 내 직업을 기입했기 때문에 주부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주부냐고 물어 본 적도 없다. 직장을 정리하면서 그냥 집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 주부 그것도 전업주부가 되는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갑자기 주부가 뭐지? 주부는 뭘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부(主婦)라는 용어는 '예기'의 주부합비입우내(主婦闔屝立于內)라는 대목에 처음 등장하는 용어로 '집안의 아내 혹은 며느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유별을 강조했으므로 집안과 집 밖에서 하는 역할과 그 역할을 책임지는 사람을 명확히 구분하였다. 남자는 집을 대표하여 집 밖에서 대소사를 처리하는 가장,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을 비롯하여 집안일을 하는 주부라고 하였다. 주부는 집안일을 하는 여자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달라져 집 밖과 집안의 역할로 남녀를 구분 지을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주부의 개념이 변하지 않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가장이란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소녀 가장이란 말도 있는 것처럼 가장이란 남녀의 구별이 따로 없는 말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주부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이라고 하여 조선시대의 개념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보통 밥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 하기를 집안일이라고 한다. 이 중에 '밥하기'하나만 보더라도 장 보기, 다듬고 씻기, 반찬 만들기(볶고, 끓이고, 찌고), 글자 그대로의 밥하기, 설거지하기, 마른 그릇 정리하기, 이 여러 일들이 모두 '밥하기' 하나에 뭉뚱그려 포함되어 있다. 반찬 만들기의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 만들기인데 이것은 단순히 '반찬 만들기' 한마디로 끝낼 수 없다. 우선 맛있는 채소를 사야 하고, 양념거리와 함께 다듬고, 씻고, 소금에 절여야 한다. 알맞게 절여졌다 싶으면 마늘, 파, 고춧가루, 젓갈 같은 양념을 넣어 잘 버무려야 한다. 그리고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은 후 커다란 양푼, 믹서 등을 싹싹 닦아둬야 모름지기 김치 만들기가 끝난다. 이 모든 게 다 '밥하기' 하나에 들어있다. 올봄에 유튜브로 열무김치 만드는 법을 열심히 배운 후 열무김치를 만들었는데 찐 마늘과 고춧가루와 김장 때 만든 양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 보기부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나마도 신랑 표현에 의하면 열무가 모두 손을 위로 들고 있었다. 열무가 제대로 절여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밥하기'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일이 빼곡히 들어있는지 모른다.
요즘에는 여자가 직장에 다니고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주부(主夫)라는 말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주부(主婦)든 주부(主夫)든 집안일이 참 많다. 촌각을 다투거나, 서류상 업무로 분류되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