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_아무것도 없어서, 더 많은 것이 보이는

by Nam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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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의자가 비어 있습니다.

누군가 막 일어났을 수도 있고, 아직 아무도 앉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순간, 그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이 장면이 괜히 오래 눈에 걸렸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점점 분명해진 생각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더 담아내는 일보다, 덜어내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

프레임 안에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어 있는 자리 하나가, 수많은 얼굴을 대신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누가 앉았을지, 어떤 하루였을지, 어떤 표정으로 내렸을지.

비워진 장면은 보는 이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깁니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꽉 채워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 비워냈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일정, 관계, 감정, 그리고 욕심까지.

모든 것을 붙잡고 있을 때보다

몇 가지를 내려놓았을 때 숨 쉴 공간이 생깁니다.


저는 사진에서도, 삶에서도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의도적으로 남겨두는 쪽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모든 자리를 채우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순간을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 말입니다.

비워진 자리 덕분에 다음 사람이 앉을 수 있고,

다음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이 지하철 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채워질 가능성에 가장 가까운 상태라는 것을

이 장면은 조용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비어 있는 자리가

언젠가 누군가의 하루를 잠시 받아줄 것이라는 사실이 좋습니다.

지친 몸을 내려놓는 자리일 수도 있고,

생각을 비우기 위해 잠시 앉아 쉬어 가는 자리일 수도 있겠지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

사진 속 이 빈자리가 제게는

그런 삶의 여백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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