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_기능이 멈추면, 존재는 보인다.

by Nam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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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제철소 안에서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쇳덩이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 물건은 지금 아무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옮기지도, 만들지도, 생산하지도 않습니다.

기능은 멈춰 있고, 목적은 잠시 유예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쓸모도 없이 보이는 이 순간이

오히려 이 물건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그저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평소의 이 공간은 기능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정해진 동선, 정확한 역할, 효율적인 움직임.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기능이 멈춘 지금,

그 논리에서 벗어난 사물들은

처음으로 제 모습에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흔히 쓸모로 사물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느새

사람에게까지 적용됩니다.

얼마나 생산적인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로

존재의 가치를 제단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 앞에서

그 기준은 잠시 무력해집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쇳덩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묘하게 단단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는 이미 충분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어쩌면 이런 순간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작동하는 장면보다,

기능이 멈춘 자리에 남아 있는 것들.

목적을 잃은 듯 보이지만

그래서 더 솔직해진 얼굴들 말입니다.


이 사진을 남긴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능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존재의 결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사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바라볼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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