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제철소 안에서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쇳덩이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 물건은 지금 아무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옮기지도, 만들지도, 생산하지도 않습니다.
기능은 멈춰 있고, 목적은 잠시 유예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쓸모도 없이 보이는 이 순간이
오히려 이 물건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그저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평소의 이 공간은 기능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정해진 동선, 정확한 역할, 효율적인 움직임.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기능이 멈춘 지금,
그 논리에서 벗어난 사물들은
처음으로 제 모습에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흔히 쓸모로 사물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느새
사람에게까지 적용됩니다.
얼마나 생산적인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로
존재의 가치를 제단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 앞에서
그 기준은 잠시 무력해집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쇳덩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묘하게 단단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는 이미 충분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어쩌면 이런 순간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작동하는 장면보다,
기능이 멈춘 자리에 남아 있는 것들.
목적을 잃은 듯 보이지만
그래서 더 솔직해진 얼굴들 말입니다.
이 사진을 남긴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능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존재의 결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사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바라볼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