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셋째 주 브런치 일기
마음만 어지러이 바쁘고 정작 실속은 없을까 두려워
#1
새로 취직한 병원엔 다행히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병원장님이 보시기엔 언제쯤 '밥값'하는 궤도에 오를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것만으로도 한동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새로운 병원은 나에게 '변신'을 요구했다. 분명 전공은 동일한데, 나는 하는 일도 다르고 환자를 대하는 방식도 바꿔야 했다. 익숙했던 내가 부정당하는 느낌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고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어찌 잘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신없는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가곤 했다. 벌써 내가 전 직장에 있었던 일들이 아련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2개월 좀 지났을 뿐이라는 것이 놀랍다. 지금 봐선 '돌아간다'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애당초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보장도 없다만.
#2
원장님과 함께 병원 밥을 먹다가 지나가듯이 들은 이야기이다. 구인 공고엔 대놓고 적어놓진 않았지만, 원장님은 너무 나이 든 사람은 안 뽑는다고 했다. 이미 계시는 다른 과장님과의 관계가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평생 계약직으로 사는 의사는 어딜 가든 새로운 직장에선 '신입'이다. 그리고 누구든 자기보다 나이 많은 신입은 꺼리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그 대단하다는 전문직 의사도 보이지만 않을 뿐 '정년'이라는 천장이 있다는 걸 느낀다. 사람들이 "의사는 돈 많이 벌지?"라고 하는 것도 의사 인생의 최전성기일 때 급여만 보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분명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전성기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일하지 않으면 수익이 0원인 건 평등하다. 고로 내쳐질 것을 대비해야 한다. 살 궁리를 해야 한다. 내년에도 이 병원에 계속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난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미래'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픔을 느낀다.
#3
다른 의사도 생각하는 건 비슷한지 딴짓하는 의사들이 많이 늘었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가장 좋은 의사 작가야 이미 넘쳐나고 의사 유튜버도 레드 오션이다. 너무 많아서 볼 게 없는 아이러니라니.
소식을 들어보니 스타트업 같이 좀 더 적극적으로 딴짓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아예 의대 졸업 후 의사를 안 하고 바로 스타트업에 올인하고 있는 분도 있다고 한다. 물론 스타트업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분들을 보면 '나는 '잘' 살고 있는가 '하고 까닭 없이 불안하곤 했다.
#4
그래서일까. 나도 (차마 사업은 못 하고) 이런저런 일을 조금씩 하고는 있는데, 현재 그다지 썩 재미를 보고 있는 건 없다. 어차피 사활을 걸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그런 '안일함' 때문에 결과도 그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우선 직장인 누구나 다 하고 있다는 주식. 뭐 요즘 시장 상황을 보면 결과가 어떨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덕분에 인생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브런치. 처음 작가 신청을 단번에 통과했을 땐 '나도 혹시?'라는 생각이 없진 않았으나, 역시 마찬가지로 인생을 배우고 있다. 몇몇 공모전에 당선도 되었고 아주 소득이 없진 않지만, 출판한다든가 구체적으로 손에 들어오는 뭔가를 이뤘다는 느낌은 아직 없다. 내 글은 '취미'라고 해야 적당할 수준일까. 이웃 작가님들은 하나 둘 뭔가 결과물을 내는 것 같은데, 나는 표류하는 느낌이다.
#5
최근 원고를 하나 부탁받아 작업 중이다. 내 이름 달고 단독으로 책 한 권 나오는 대단한 일은 아니고 지인에게 부탁받아 하는 일. 돈은 받을 수 있을지, 심지어 결과물은 받아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업량이 적지 않아 당분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보니 왜 할까 싶은 일이네... 나도 뭐에 홀려서 하는지 잘 모르겠다.
좋아서 하는 거면 그만이라지만, 현재로선 뭔가 일을 벌여 놓곤 별 소득도 없이 바쁘기만 할까 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