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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l 22. 2022

2022년 7월 셋째 주 브런치 일기

올해도 늘 그랬듯 다 지나버리고 있다.

#1

원래 6월 마지막 주에 '벌써 1년의 절반이 지나간다'는 식상한 표현으로 시작하는 일기였는데,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하다 보니 7월이 되었고 '이런 글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허무감에 빠져 있다 보니 이미 7월 말이다. 어차피 일기일 뿐인 글조차 나아가지 못하는 내 모습이 비가 올 것 같으면서 내리지도 않는 꿉꿉한 날씨 같다. 그 와중에 브런치에선 공모전 '예고' 공지가 올라온다. 1년이 또 지고 있다.


재촉하는 이는 없지만, 다 눅눅해진 이 글을 붙잡고 계속 있는 것도 영 못 할 짓이라고 느낀다.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


#2

날짜까지 세는 사람이 보고 싶다고 하면 보통 무섭지 않을까?


브런치에 글을 안 쓴 지 60일이 넘은 모양이다. 그저 정해진 문장으로 코딩되어 날아오는 알람일 뿐이라는 건 모르지 않지만, 내용을 보면 브런치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브런치 작가님! 얼른 일어나 브런치에 축적할 글들을 쌓아주셔야죠. 이번에 출간하는 '진짜' 작가들을 보세요! 이렇게 저희가 꿈꾸게 해드리는데 일 안 할... 아니 방금 들은 건 잊어버려요. 아무튼 글 안 쓰실 거예요?"


모든 브런치 작가가 '진짜' 작가가 되지 못한 지망생인 건 아니다. 다만 이번 공모전 예고를 보면 난 브런치도 브런치 작가와 '작가'를 구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다르게 표현할 만한 용어는 없겠지만, 브런치에서 소소하게 탄생했던 글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라...


1년에 고작 10명 남짓이다. 그 1년 동안 '브런치 작가'는 어림잡아 최소 1만 명 정도 탄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브런치 공식 보도 자료에 따르면 말이다. 그중에 10명만이 브런치가 생각하는 새로운 '작가'이고 나머지는 그냥 브런치 작가이다.


#3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브런치에 글 쓸 시간이 없었냐고 자신에게 묻는다면 "정말 그랬다"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최근에도 난 퇴근 후 '탑건: 매버릭'을 봤으니 말이다. 브런치가 날 애타게 찾는 알람을 보니 쓸데없이 배덕감마저 느낀다.


그나저나 진짜 잘 만든 영화였다. 다들 호평만 하길래 궁금해서 봤지만, 박물관에 모셔진 줄 알았던 영화의 속편인지라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난 마하 10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며 귀가했다. 이룬 것도 없는 성취감마저 느끼며 잠들 수 있는 무서운 영화였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현실은 positive G로 나를 짓눌렀다. 눅진한 더위에 알람보다 일찍 깼고 피로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시원하게 샤워했지만, 머리를 말리는 중에 이미 등에 땀이 맺히는 걸 느끼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답답함은 출근길 지하철로 이어진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움직일 수 없으니 예전에 봤던 그림이 떠오른다. 대항해시대 노예선이 노예들을 이런 느낌으로 겹겹이 쌓아서 운반했다고 하는 그림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린 '무언가'가 되는 꿈을 꾼다.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명색이 브런치 작가라면 이래야지'라고 하며 누군가는 작가주의를 말하고, 누군가는 진실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하며, 다른 누군가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호통친다. 그렇지 못한 브런치 작가의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숨이 막힐 것 같다. 브런치 작가가 브런치 작가에게 말하고 나도 브런치 작가이다. 우린 브런치선(船) 안에서 겹겹이 쌓여있다.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


#4

지인에게 부탁받은 원고의 초안을 완성하였다. 책으로 출판하는 일도 아니고 아직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여기에 굳이 홍보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이건 내가 쓴 거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여유 시간에 썼다곤 해도 잠을 아껴가며 힘들게 쓴 글이기 때문이다. 다만 보상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무래도 없거나 애매하지 않을지 싶다. '우리 사이에' 원고료를 이야기하긴 뭐한 그렇고 그런 상황이다.


지금은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데, 요구사항을 듣자니 솔직히 귀에도 잘 안 들어오고 지친다. 아무래도 난 누군가의 꿈을 따라 쫓는 입장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남의 꿈을 꾸는데, 손에 딱 잡히는 보상은 없으니.


지칠 때마다 난 브런치에 글 쓴다고 생각하곤 한다. 여기가 어딘가, 열정 페이 플랫폼 브런치 아닌가. 브런치에서 '보답 없는' 글쓰기를 하며 정신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초안을 완성하기 전에 진즉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건 좀 아니죠..." 하면서 미리 각을 재보곤 하겠다고 하지도 않았을지도.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 별을 바라보며 공짜로 글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쯤이야...' 같은 생각을 하면서 버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브런치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언젠가는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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