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 언급하였듯 저는 브런치를 '공모전 전용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건 맞지만, 어떤 면에선 그건 그저 깔끔한 '테마' 때문이지 기존 블로그도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깐요. 블로그 카테고리 같은 것이 '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느낌이랄까.
브런치가 블로그와 차이점을 내세울 수 있는 점은 허락된 작가만 글을 쓸 수 있다는 폐쇄성일 텐데요. 그건 독자 (그리고 브런치)에게 좋은 일이지 작가 본인에게는 큰 메리트는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나 될 순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경력에 '브런치 작가'라고 한 줄 넣기에는 뭔가 애매한 희소성이지요. 그리고 어차피 '작가'가 될 작가라면 (?) 브런치 심사 통과가 목표는 아니니까요. 그건 예선 같은 것이고, 본선은 피 같은 레드오션입니다. 여러 작가분들이 퀄리티 있는 글을 쏟아내고 있는데 브런치는 그저 의중을 알 수 없는 부처님 미소만 짓고 있는 것이에요.
브런치가 작가에게 줄 수 있는 건 그저 '기회'일뿐이에요. 공식적인 기회는 공모전이고, 비공식적인 기회는 아마 작가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이 가는 강의나 원고 문의 같은 거겠죠. 그런 문의는 진짜 운이 좋아서 누군가 먼저 작가에게 손을 내미는 거니깐 정말 이름이 나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것도 작가와 출판사 등의 개인적인 연락이니깐 엄밀하게 말하면 브런치가 해준 건 장소 제공 (=플랫폼) 일뿐이겠어요.
그렇다면 결국 안 유명한 작가가 브런치에서 뭔가를 이루는 수순에서 가장 첫 번째는 자기만족 (뿌듯함)이 되겠습니다. 이거라도 없다면 잠도 안 자고 밤새도록 글을 쓰지 않았겠지요.문제는 그다음인데...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는 동기가 필요하지요. '그냥 쓴다.'라는 것도 동기가 눈에 띄지 않고 본인이 아직 구체적으로 모를 뿐이에요. 저는 브런치에선 그게 '공모전'이라고 판단했는데, 저도 잊고 있었던 동기가 있었어요. 그건 인기 (=조회수)였죠.
저도 처음엔 조회수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브런치를 시작한 작가가 조회수가 나오면 얼마나 나오겠어요. 전현무 씨의 《Moo진기행》처럼 '나유명' 작가임을 밝히고 시작하는 거라면 모를까. 조회수에 집착하면 의욕이 꺾이는 건 당연하니 '난 어차피 공모전 지향이니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쉽진 않았지만 여러 작가님의 응원 (라이킷)을 받으며 금세 조회수에는 무감각해지고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저였지만 최근 조회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간의 소소한 변화를 '無'로 만들어버리는 압도적인 조회수.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친 걸까. 기분 좋으면서도 무섭습니다.
조회수가 이상하리만큼 증가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튀는 현상에는 원인이 있는 것이죠. 직감적으로 '이건 브런치가 뭔가 했다.'라고 생각한 저는 찾아보았죠. 조회수는 증가되어 있었으나 그건 골고루 증가한 것이 아니었고, 특정 글들만 유독 증가되어 있어서 이것이 뭔가 메인에 노출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글들을 찾아보니...
이게 거의 하루 이틀만에 일어난 일.
와! 제 글이 브런치 인기글 (PC에서는 메인 하단 글)과 카카오톡 탭에 올랐었군요.어떻게 찾았냐고요? 브런치 통계는 조회수만 알려주지 않고 유입경로도 알려주니까요. 이상하리만치 많은 유입경로가 특정되면 거기서 내 글 하나 찾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심리학에선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고 하던가요.여러 글이 있어도 나에게 의미 있는 글은 잘 보이지요 (선택적 주의 selective attention).
다른 곳에서 내 글을 접하는 것은 작은 감동이었습니다. 어차피 조회수가 천이든 만이든 유튜브처럼 저에게 직접적인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홍보를 위해 카카오톡 탭에 띄우려고 했음 돈이 드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제가 학생 때 병원을 운영하던 선배가 해줬던 얘기가 있습니다. 카카오톡도 없던 시절 이야기지만, 네이버 검색 상위에 홍보글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해서 지출되는 비용만 해도 수많은 돈이 깨진다고요.
그렇게 따지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는 저에게 선물을 준 것입니다. 통계를 보아하니 효과는 한 2~3일 정도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한편 이렇게 감사하고 끝나면 '그저 운'이라고 했겠죠. 저는 궁금했어요. 나의 글들 중 왜 이 3개일까요. 그리고 왜 지금일까요.
# 어떻게 내 글이 선택된 걸까
브런치의 어떤 글이 브런치 메인에 실리고, 카카오톡 탭에 노출되는지는 저는 끝내 알 길이 없겠죠. 일단 당연히 기본은 조회수일 겁니다.
우선 쉬운 건 메인에서 노출되는 글 중 일부는 '내 관심사'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전에 안데르센 삽화 공모전에 응모하고 다른 작가님들의 그림을 구경한다고 전부 훑었더니 한동안 저의 브런치 앱에선 안데르센 삽화 글만 노출된 적도 있었어요. 그분들의 글이 실제로 인기가 있어서 메인에 노출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건 그저 제 아이디로 로그인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땐 로그아웃된 환경에서 보기도 해요.
그게 아닌 글은 어떻게 메인에 오르는 걸까.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혹시《슬기로운 의사생활》 (슬의생) 덕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드라마인데 정작 못 보고 있습니다. 일상에 브런치를 끼워 넣으니 남은 자리가 없어서요. 대략적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고 있습니다. 듣자 하니 최근에 임신 19주 조기양막파열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난 볼 수가 없으니 대략적인 줄거리를 말해달라 해서 들어보니 감동적일 수밖에 없겠더군요. 전 실제 그런 산모들을 오늘도 보고 있긴 합니다만. 슬의생이 아니어도 브런치를 해서 그런지 요즘 환자 면담이 다소 문과적이고 감성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건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에요.
한편 가설을 세워봅니다. 슬의생의 해당 에피소드가 그렇게나 감동적이었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기양막파열'을 검색했을 것이고, 그러다 제 글도 우연히 시기가 겹쳐 얻어걸린 것이라고요. '그저 누워만 있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야' 에피소드는 조기양막파열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글에도 조기양막파열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슬의생 효과(?)로 조회수가 증가된 제 글은 이후 브런치의 선택을 받습니다. 제가 조회수 통계를 계속 보고 있었다면 조회수 몇부터 그렇게 되는지 '티핑 포인트'를 알 수 있었을 텐데요. 아쉽게도 놓쳤습니다. 적어도 최소 글 하나로 당일 조회수 100은 넘겨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기분이 좋았으나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저 슬의생과 브런치 덕분이지 제 글이 특출 나게 잘난 것도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브런치는 저에게 선물을 주면서 숙제를 남겨준 셈이죠. 더 잘 써라고 응원하면서요.
슬의생은 저에게 간접적인 도움을 주었을지 모르겠으나 어떤 벽을 준 것이기도 합니다. 슬의생은 마치 의학을 주제로 다룬 에세이의 '상위 호환' 격이기 때문입니다. 프로 작가들이 그것도 아마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어 짜내었을 감동의 틈에 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나 있을까요. 저의 브런치가 갑자기 조회수가 늘었지만 그것이 다른 글로까지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손님들이 많이 들어오긴 했는데 그냥 고개만 휙 돌려보곤 다시 나갔다는 것이겠죠. 인디 작가로서 만족하는 것도 보람이 있겠지만 뭔가를 목표로 한다면 아직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전 제 브런치의 가게 주인이에요. 뜻하지 않게 소중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준 브런치에게 감사합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슬의생에게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