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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l 14. 2021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삽화 공모전을 떨어진 소감

《제13회공유저작물창작공모전1차- 삽화 부문》

최근 브런치북 하나를 공모전에 응모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차기작을 구상하는 나... 따위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겁니다. 꽤나 열정을 담아 브런치 공모전에 도전했고, 떨어졌고, 또 도전하였지만 그렇다고 제 일상이 크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당선이 되면 뭔가 좀 달라지나요? 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브런치랑 윌라가 알려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와 벌써 수요일이네요. 분명 일요일에 마감했는데 벌써 수요일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브런치엔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지요. 작가님들 다들 잘 계시지요?




제가 브런치 작가가 되고 공모전에 도전할 때만 해도 전 공모전이라는 것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남들보다 일찍 경험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건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사생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곤 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응모할 때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항상 들었던 건 아마 그래서 그런 거겠지요. 고작 세월 조금 흘렀을 뿐인데 일에 치여 잊고 살고 있었네요. 아마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지금의 저보다 더 열정적이었을 겁니다.




'이 학교에선 내가 가장 잘 그려! 아마 6학년 누나들도 나만큼은 못 그릴 걸?'


이라는 생각을 한 건 아마 2학년이었나 3학년 때 즈음. 한창 수채화에 맛 들인 시기였습니다. 이미 교내 사생대회 같은 건 상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미술보단 떨어지긴 해도 글짓기도 능력이 터져서 거의 상장 콜렉터 수준이었죠. 네 정말 재수 없는 녀석이었네요. 부모님이 떠민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얘는 도대체 뭐하는 아인가 했을 거예요. 계속 그림만 그리고 있으니... 생각해보면 약간 요즘 게임의 업적 달성 같은 것 같아요. 어떤 분은 가상 세계에서 트로피를 모으고, 초등학생 때의 전 상장을 모으면서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사생대회에 임할 때 '그냥'이란 건 없었어요. 그 당시에도 이미.


그래서 전 늘 학교 대표로 시 대회, 전국 대회에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입선을 못 했어요. 정확한 학년은 기억이 안 나요. 예를 들면 2학년 때 탈락, 3학년 때도 탈락, 4학년 때도 탈락... 3학년인가 4학년인가 땐 입선 명단에 제가 없자 반나절을 계속 울었던 것 같네요. 그러자 어떤 어른이 저를 달랜다고 했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네가 3(4?)학년 답지 않게 너무 잘 그려서 그런가 봐. 심사위원들이 누군가 어른이 도와줬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거야."


그러나 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쟤들(입상자)은 왜 뽑힌 거야?'




비록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나름 잘했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전 어렸을 때부터 이미 미술 쪽으론 직업을 삼지 말아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미 난 '전국구'가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림에 순위를 매기는 것도 그렇지만, 그 기준조차도 너무 애매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런가 그림도 슬슬 재미가 없어지고 단순 노동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매너리즘이 이런 걸까요. 아직 초등학생인데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아그리파를 배우는데 아그리파 씨가 말합니다.


"너 그림 정말 못 그리네."


초등학교 6학년이었나, 마지막 사생대회는 꽤나 의미가 있었습니다. 대상까진 아니었지만 나름 입선은 하였지요. 상품으로 이쁜 파스텔을 받았지만 어차피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오랜 숙원을 이룬 기쁨보단 왜인지 모르게 시원섭섭한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그림을 안 그리게 될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중학생 때도 몇 번의 대회는 나가곤 했지만 입선을 했던가 안 했던가도 이젠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제13회공유저작물창작공모전1차- 삽화 부문》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읽어보았습니다. 옛날 사생대회는 이런 말 조차 없었으니 (아 그때도 인사치레 정도는 있었나?) 그때보단 상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인사치레에 가까운 심사평이긴 하지만 요약을 하자면


- 독창성. 어차피 그냥 잘 그리는 것 가지곤 심사위원들이 더 잘 그리실 테니까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쁘게" 튀어야 합니다.


- 활용성. 이 공모전의 주최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이고, 이 단체는 CCL로 어떻게든 써먹기 좋은 그림을 좋아했을 겁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공모전은 처음부터 작가에게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진 않았던 것이에요. 뽑아놔도 쓰이지 않을 그림을 선정하는 건 훌륭한 세금낭비이니깐요. 그래서 작품의 한 장면만 그린 것보단 전체 스토리를 그림 동화같이 다 그린 '풀 패키지' 작품들이 많이 뽑힌 것 같은 건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 그러나 그럼에도 일단 잘 그려야 하겠지요. 그건 적어도 성의는 있어 보이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완성도).


그림을 손 놓은 지 너무 오래된 저는 이제 와서 손을 푼다고 프로 작가님처럼 그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그리긴 했는데 심사위원들이 보시기에 최소한 성의는 있었을지 (=1차 심사는 통과했는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활용성은 생각도 안 하긴 했지만, 독창성도 지금 보니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당선 작품들에 비하면요. 한편 솔직히 잘 모르겠는 작품도 있긴 했습니다. 그런 애매하고 알 수 없는 기준 때문에 전 예술계 공모전이 참 어렵습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건 알겠다 쳐도 되는 사람은 왜 된 건가 하는 것이 말이에요.


이번엔 똑같은 주제로 글짓기 부분을 공모하고 있는데 딱 옛날 사생대회 생각이 나는군요. 한쪽에선 그리고, 다른 쪽에선 써라. 이 공모전도 도전할까 싶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진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어쩌면 마감기한까지 못 쓸지도 모르겠어요.


혹시나 도전하실 작가님들을 위해 1차 삽화 공모전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뭘 원했던 것 같은지 제 의견을 남겨놓습니다.




P.S. 의대생이 되고 난 뒤 어느 날. 뭐하다 그런 얘기를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난 어릴 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사생대회도 나가곤 했어."라고 말하자, 한 친구가 "어? 너도 거기 나갔어? 나는 글짓기 부문 나갔는데 신기하다."라고 했지요. 놀랍기도 하고 머쓱해진 저는 "뭐 나가도 입선한 적은 없었지만 말이야. 근데 너는 입선한 적 있었어?"라고 슬쩍 물어보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으응... 난 사실 대상이었어."


아 그렇구나. (비록 다른 부문이긴 해도) 그게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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