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든 생각 몇 가지
아마 오늘 새벽 2시였나 3시였나 그 넘어가는 언저리였을 것이다. 내 글에 누군가 댓글을 남겼다는 브런치 알림이 왔다. 나는 마침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바로 확인해보았다.
'....'
광고였다. 블로그를 좀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받은 경험이 있을 달갑지 않은 스팸이다. 이럴 수가! 브런치에도 이런 걸 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삭제하고 나니 아차 캡처라도 해놓을 걸 그랬나 싶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어떤 내용일지는 다들 상상이 갈 것이다.
[스팸 글의 삼단 구성]
① 대충 뭔 소리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장광설
② www.어쩌구.com/수상하리만치/긴/사이트주소
www.어쩌구.com/수상하리만치/긴/사이트주소
→ 시각적으로 더 괴롭혀주고 싶다면 주소를 여러 번 적어주자.
③ 결국 자세한 이야기는 홈페이지를 참고하라고 할 거면서 그동안 한 얘기는 다 뭐지 싶게 마무리도 지리멸렬
당연히 바로 삭제다. 몇 초도 안 걸렸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감정을 가지는 것조차 사치이다. 그런데 어라? 하나를 삭제하니 상대방이 바로 두 개를 등록한다. 보란 듯이 내가 댓글을 삭제한 글에 하나, 그리고 '이것도 지울래?' 하듯이 다른 글에 또 하나. 여기서부터는 감정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분명 화면 너머엔 사람이 있겠지. 댓글 로봇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로봇을 시키는 사람이 말이다. 이게 정말 '광고'라면 그는 한참 잘못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 브런치는 방문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피차 고생하지 말자고 그냥 차단했다. 어차피 브런치 작가 등록도 안 된 아이디라 한없이 無에 가까운 무게를 지니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가 없다. 그 광고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생각들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생각을 머리에서 덜어내기 위해 몇 자 글을 적어놓는다. 그가 여기 다시 와서 이 글을 보든 말든 말이다.
#1 이런 방식의 광고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면 가족들과 모처럼 식사라도 하면서 차분히 이야기 좀 나눠보길 바란다.
난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해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부류의 홍보 방식은 익숙하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하던 걸 봤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연속적이지 않고 사진처럼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오래전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얼굴 자체를 보는 것도 어려웠다.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다. 살기 위해서 그러셨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도망치고 계셨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원망하는 감정이 없다곤 못하겠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연민도 크다. 아버지는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은 학벌과 전공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지금은 영 퇴화한 것 같은) 공부 머리는 아마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준 유일한 유산이다. 전성기 땐 좋은 대우로 대기업에 취직하셨다고 들었다. 딱 시대가 요구하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던 분이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의 최대 수혜를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3N이나 카카오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 아버지였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런 상상도 예전엔 해보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돈, 시기, 운 모든 게 따라주지 않았다. 한국은 곧 IMF가 찾아왔다.
그때 아버지는 어떤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그동안 공부하고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다 부정당한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어머니는 굉장히 현실주의적인 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일단 눈높이를 (한없이) 낮춰서라도 다시 '취직'해서 '돈'부터 벌자고 했으나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선택한 건 사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사업은 아버지 적성에 그다지 맞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학생 땐 아버지의 사업 내용이 참 허황하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좀 컸을 땐 아버지에게 솔직히 이걸로 돈을 어떻게 버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소신 (불효?) 발언도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에 별 대답을 못 하시곤 그저 웃으셨다. 아버지께서 당시 하던 사업은 배달 광고 쿠폰책 같은 거였다. 당시엔 업체별로 전단을 돌리기만 하던 (지금도 남아있긴 하지만) 시절이었는데, 그걸 모아서 발행한다는 개념이었다. 당시 난 광고료도 내고 할인 쿠폰도 주는 건 음식점 사장님이 미쳤을 때나 가능한 게 아닐까 싶었고 이게 뭐가 돈이 된다는 건가 싶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전공과는 하나도 관련 없어 보이는 일이어서 싫었다. 어차피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할 거면 '취직'하는 것이 더 나은 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 아버지의 사업은 언제 끝났는지 알 수도 없이 흐지부지 끝났고 가족에겐 빚만 남았다.
시간이 흘러 난 병원에 취직했다. 어느 날 전공의 선생님이 인턴인 내게 밥 시키라고 뭘 하나 던져 줬는데, 그걸 본 난 충격을 받았다. 쿠폰책! 아버지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통하고 있었다. 그 쿠폰책을 보고 난 울 뻔했는데, 전공의 선생님이 바빴으니 망정이지 밥 시키라고 했다고 우는 미친 인턴이 있다는 소문이 돌 뻔했다. 이후 병원 생활하면서 쿠폰책을 깨알같이 잘 이용했다. 이게 얼마나 돈이 되는 사업인지,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버지에겐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흘러 등장한 각종 배달 앱은 이 쿠폰책 아이디어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배달 앱까지 가니 비로소 뭔가 'IT' 같이 보이고 아버지의 전공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이게 '플랫폼'이라는 거였구나... 아버지는 정말 돈, 시기, 운 모든 게 따라주지 않았다.
감정이 울컥해서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돌아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댓글에다가 광고하는 건 아버지가 이미 1990년대에 많이 했던 고리타분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당시는 블로그는 없었으니 각종 게시판에 쓰곤 하셨다. 게시판 지기가 자꾸 광고 글을 올리면 '강경한 대응'도 고려하겠다는 경고를 하는 것도 보았다. 그걸 본 아들의 착잡한 느낌이란! 그러나 어쩔 수 있겠는가. 아버지에겐 돈이 없었다. 그 빌어먹을 '돈'이 없으니 광고도 그딴 허접한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도 안 들지만, 효과도 빵점이고 시간만 초 단위로 버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홍보는 어쨌든 필요했고 아버지는 묵묵히 광고 글을 올리곤 하셨다.
그러니 광고장이분. 이런 짓을 하는 상황은 이해해줄 수 있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굉장히 고루한) 방식이므로 앞으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댁에 아드님이 있다면 새벽에 광고 달 정성으로 집에 가서 자는 아들 머리라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아내와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눠보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될 것으로 보이는지.
#2 현대에는 비밀의 묘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있다면 거대 제약회사가 이미 특허 등록했을 것이다.
인류의 지성은 과연 상승 곡선의 발달을 그리고 있을까. 의학의 역사를 배우다 보면 잠깐 그리 생각이 들 때도 있곤 했다. 그러나 그래프를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가 '발전'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저 찰나의 '진동'에 불과한 것 아닐까. 2020년대에도 유사 과학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한층 더 교묘해지기만 할 뿐이다. 2019년에 발생한 역병은 과거 '페스트' 시절의 인간과 현대인이 하등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며 비웃는 듯하다.
새벽의 광고가 특히 질이 '나쁘다' 생각한 건 아직 난치병이라고 불리는 특정 질환을 완치한다고 광고했기 때문이다. 하필 의사인 내게 와서 그런 댓글을 남기는 건 일부러 그러는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효과에 그리 자신 있다면 떳떳하게 양지로 나와서 학계에 보고하고 다수에게 인정받길 바란다. 그러나 아마 광고처럼 기적의 약이라면 '거대 악의 집단' 제약 회사가 이미 날름 채갔을 것이다.
현대 의학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도 곤란하다. 또한, 거대 제약회사들의 음모(?)라든지 이상한 의사들의 비위(非違) 때문에 병원에 신뢰가 잘 안 갈 수도 있다. 사기꾼들이 공략하는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현대 (서양) 의학을 비판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것을 끼워 넣는 것이다. 은근 혹하기 쉬워서 조심해야 한다. 의학이 틀렸다고 사이비가 맞는다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또한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탐욕스러운 의사 놈들이 효과 좋은 치료법이 있다는 걸 알면 진즉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뺏어갔을 것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잘 숨겼지?'라고. 왜 그쪽은 의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의학은 어떤 '이상향'을 향해 전 인류가 힘을 모으고 있는 학문이다. 한의학계는 아직도 현대 의학을 '서양' 의학으로 보고 대립 구도의 관점에서 보고 있지만(물론 의사도 마찬가지다), 현대 의학은 이미 서양 의학을 넘어선 어떤 대통합의 개념이다. 이렇게 말하면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효과가 있는 건 (이는 곧 돈이 될만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탐욕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제약회사가 먹을거리를 찾는데 얼마나 혈안인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어떤 비약이나 비술이 있다? 그건 먼저 사기를 의심해봐야 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사기 치는 놈을 계속 처벌해도 기상천외한 사기꾼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나온다. 아픈 사람은 특히나 절박하니 더욱더 사기에 취약해진다. 그래서 혹시 몰라 글을 남겨보았다.
추신) 그러니 날 믿으라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