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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Dec 27. 2021

2021년 마지막 주 브런치 일기

12월은 끝이 아닌 변화를 준비하는 달

#1


크리스마스 연휴는 일한다고 바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 시국에 일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로 생각하는데, 놀러 나온 인파를 퇴근길에 보니 또 그다지 좋은 것 같지도 않은 이상한 느낌이다. 이대로 연휴를 끝내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나도 간단히 외식하고 서점에서 책 좀 보다가 왔다.


서점은 오랜만에 왔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라서 그런 걸까. 서점에 놓인 책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전엔 '이 책 재미있을까?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즉, 소비자의 관점에서만 생각했다. 말하자면 손해를 보기 싫다는 거였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말이다. 사실 그거 고민할 시간이면 아무거나 한 권을 읽었겠다 싶을 정도로 요즘은 정말 책 한 권도 제대로 못 고르겠다. 정말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엔 생산자의 측면에서도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책이 나와 서점에 놓여 있다는 것만 해도 내가 보기엔 대단하지만... 솔직히 여기 있는 책 중에 손 하나 타지도 못하고 폐기되는 책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책들은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지 못한 것도 어쩌면 환경보호를 위해서라는 큰 뜻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의사가 쓴 책도 많았다. 대한민국은 의사가 넘쳐난다! 이젠 의사라는 스펙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세상이다. 나도 면허증 쪼가리 하나로 백지수표처럼 써먹을 생각은 아니긴 하지만, 그저 난 뭘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 뭘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지, 그러면 괜찮은 건지 이젠 확신이 들지 않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책을 훑어보며 '이 의사 선생님은 이런 얘기로 책을 다 내는데 왜 난 안 되나?'라는 시건방진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그래도 이분은 책을 냈잖아. 내 이야기도 누가 보면 비슷하게 생각할 거야'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한편 눈에 띄는 건 정지음 작가님의 《젊은 ADHD의 슬픔》이었다. ADHD를 형상화한듯한 무지개색 제목(이거 편견 아냐?)의 표지와 '8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고 광고된 띠지가 인상적이었다. 브런치북 대상이 하나만은 아닐 텐데 이 책만 나와 있는 것이 신기해서 잠시 서서 바라보았다.


#2


비록 공모전 결과를 하나 더 기다리고 있지만, 올해 브런치 공모전이 전부 끝나니 정말 2021년도 다 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브런치 방문자 수에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 내 브런치는 '공모전 관련 글'로 흥했던 것이 맞는 듯하다. 눈에 띄게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걸 보니 '26일의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이런 느낌인가보다 싶다. 방문자 수도 '마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유입 키워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떨어진 인턴'의 줄임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전공의 지원이 있었고 합격자 발표가 났었다. 그리고 누군가 떨턴이 되어서 열심히 검색한 결과 내 브런치에도 유입이 된 모양이다. 당장 내가 있는 이 병원만 해도 어디 보자... 올해 대략 20여 명의 떨턴이 발생했다. 우리 병원 인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브런치에 방문해주신 떨턴 선생님께 우선 위로를 전하며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사실 떨턴, 떨턴 하긴 하지만 진정한(?) 떨턴은 '군 미필 남자 떨턴'일 것이다. 군필이나 여자 떨턴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다가 내년에 또 지원할 수 있다. 오히려 바깥 생활을 하다가 다른 길이 풀리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이들이 떨어질 걸 각오하고 인기과에 소신 지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떨어지면 1년 쉬지 뭐' 약간 이런 느낌이다. 즉 대부분의 떨턴들은 여선생님인 경우가 많다.


반면 몸 사려야 하는 건 군 미필 남선생님인데, 이들이 떨턴 되면 일반적으로는 군대로 끌려간다고 보면 된다. 요즘 군대야(?) 할만하다고 하고 '중위' 군의관이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군대는 '군대'이다. 인턴을 마친 나이에 '중위'라는 계급은 매우 애매한 것으로 온갖 불합리한 처사에 '그래도 의사'라고 시기 질투받는 게 예삿일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무려 3년 2개월을 견뎌야 한다! 그래도 현역병은 멋모를 때 입대해서 1년 6개월 복무하고 마니까 솔직히 뭐가 더 나은 건지 잘 모르겠다. 참고로 내가 인턴 땐 그런 식으로 중위 군의관을 하던 선배가 마음의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남자 인턴들이 몸을 사려 거의 모든 과가 경쟁률 '1대 1'을 넘기지 않는 아름다운 현상을 보여주었던 바 있다. 3년 2개월을 다녀오면 병원에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보장도 없다. 여러모로 손해가 클 것이다. 아마 이 제도가 없었다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원하는 선생님마저 없어 기피과는 전멸했을 것이다. 이 동네도 시스템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것이다.


떨턴은 발표일 즉시 명단이 작성되어 미달 과 교수님들께 제공된다는 걸 아는가? 병원 입장에서도 기피 과에 사람이 없으면 운영이 힘들기 때문이다. 떨턴에게 바로 전화가 갈 것이다. 당시, 나도 나의 불행을 기회로 삼는 마치 '토끼몰이' 같은 인상을 받아 기분이 나빴다.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전화했나 싶었는데, 병원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짜증 나겠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이미 한참 전의 이야기라 추억같이 말해줄 수 있다. 지나고 보니 무슨 과를 해도 비슷비슷한 것 같다고. 나를 볼 때나 친구들을 보면 말이다. 따라서 미련은 남아도 크게 후회는 하진 않는데, 그렇다고 떨턴에게 '아무거나 해라'라고는 못 하겠다. 떨턴에게 내가 선배랍시고 조언을 하기엔 나도 항상 흔들리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정답이 없고 고민만이 있을 뿐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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