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1. <베를린 유년시절>의 형식
<1900년대 베를린 유년시절>은 기억과 회상의 글쓰기다. 이 글에서 성년이 된 벤야민은 말 그대로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고 기억하면서 글을 쓴다. 하지만 이 글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단순한 '회상록'과는 구별된다. 벤야민 자신이 밝히듯『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이하 '유년시절')은 자서전이 아니다. 자서전이 "시간, 사건의 진행, 삶의 연속적 흐름"과 관련된다면 여기 묶인 41개의 단편들*은 '티어가르텐', '너무 늦게 도착함', '어느 겨울 저녁', '블루메스호프 12번지' 등의 제목에서 보듯 "하나의 공간, 순간들, 불연속적"인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이 글의 외적 형식은, 과거의 살았던 순간들에 목적론적, 서사적 구조를 부여하는 회상방식과 역사서술을 거부하는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신념에서 연유한다. 그렇기에 '베를린 유년시절'이라는 제목만 보고 벤야민이 자신의 유년시절을 자근자근 이야기해주길 기대하는 독자는 그 특유의 압축된 문장으로, "이전의 모든 연관관계로부터 떨어져 나와", "수집가의 갤러리에 있는 토르소나 폐허 파편들" 처럼 이루어진 단편들을 대하고 실망할 것이다.
텍스트 내에서 찾을 수 있는 "연관관계'와 "시간, 사건의 진행" 또는 "연속적 흐름"은, 벤야민에게는 피해야 할 것이었지만, 텍스트를 읽는 독자와 결국 독자로서 출발하는 번역자에게는 텍스트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이정표들이다. 그것들이 파괴되거나 의도적으로 제거된 텍스트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평소 저자가 어떤 길을 선호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걸음을 걷는지에 익숙해 있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런 텍스트는 우리를, 지도 한 장만 손에 쥐고 울창한 숲 속에 던져진 고독한 미아로 만든다.
형식적으로 볼 때 이 글은 무엇보다 단편적이다. 일반적인 회고록이 회고되는 삶을 시간적 서사에 따라 혹은 저자가 설정한 어떤 ‘목적론적’인 삶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다면, 벤야민의 이 글은 '티어가르텐', '블루메스호프 12', '승리탑' 등 특정한 장소나 '전화기', '찬장', '수달', '글자상자', '회전목마' 등의 물건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달고 있는 단편들의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에 눈뜨다' , '여행과 귀환', '너무 늦게 도착함' 등의 제목을 단 단편들은 삶의 개별적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도 어떤 시간적이거나 전기적 맥락이나 배경은 전혀 없다. 왜 그럴까? 이 책 - 혹은 글 모음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까? - <베를린의 유년시절>이 우리가 보는 이런 파편적 형식을 띄게 되었던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를 외적인 이유와 내적인 이유로 나누어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1. <유년시절>의 발생과 편집사
1.1.1. 네 개의 판본
먼저 외적이유부터 살펴보자. <베를린 유년시절>은 벤야민의 다른 어떤 글보다도 매우 복잡한 발생, 발견, 그리고 편집과 출간의 역사를 지닌 텍스트다. 이 텍스트는 1932년 4월에서 6월까지 벤야민이 이비자에 머무르던 때 처음 시작되었다. 처음 몇 편의 글들은 1933년 1월 15일 Vossische Zeitung, Frankfurter Zeitung 에 실렸다. 벤야민은 글 전체를 출간하려 했지만 히틀러가 정치권력을 잡고난 후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1933년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실린 글은 12편이었다. 그는 여러 출판사에 그 글을 보내, 출간을 의뢰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벤야민은 1938년까지 이 글에 계속 매달려있었다. <베를린 연대기>는 처음엔 <문학세계>에 싣기 위해 쓰여졌고, 그를 위해 그는 1932년 3월까지 작업하였다. 오늘날 <베를린 유년시절>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 모음 중 벤야민 생전에 출간된 것은 1932년 Vossische Zeitung에 실린 "크리스마스 천사"를 비롯한 몇 개에 불과하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익명으로 신문에 실렸다. 벤야민은 이 단편들을 모아 책으로 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해보았지만 여러 사정 - 나치의 득세로 인해 독일 출판계의 지각변동 등 - 으로 인해 그 바램이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베를린 유년시절>은 벤야민이 살던 시절에는 결코 하나로 묶여 책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헐겁게 묶여져 있던 텍스트들의 모음이다. 같은 이유로 이 단편들의 순서 또한 벤야민 스스로에 의해 정해져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사정을 더 강화시킨 것은 벤야민이 - 어쩌면 그 출간이 실현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 스스로가 이 단편들에 대한 여러 개의 수정본을 남겼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 아마도 이 글에 대한 그의 깊은 애착의 결과이겠지만 - 이 단편들 각각을 어떤 경우에는 '단어'를 어떤 경우는 몇 몇 구문을, 여러 번 수정해 고쳐 쓰기도 하였다.
<베를린 유년시절>의 이런 파편적 성격은 나아가 이 텍스트 모음의 다양한 판본들이, 벤야민 말년의 삶의 조건으로 인해 여기저기 - 전 세계로 - 흩어지게 되었다는 사정으로 인해 더 강화되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벤야민 글의 원본은 4가지이다. 1. Felizitas-Exemplar (1932/34), 2. Stefan-Exemplar (1932), 3. Geissener Typoskript (1933), 4. Pariser Typoskript (1938) 라 불린다.
첫번째와 두번째 원고 모음은 벤야민의 손으로 직접 쓰여진 Handwriting이며, 세번째, 네번째 원고 모음은 타이프로 쳐진 원고다.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수고는 1940년 여름까지 망명지 파리에서 벤야민이 살던 집 - 10 rue Dombasle - 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여동생과 함께 파리를 떠나면서 벤야민은 자신의 글들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료들은 집에 남겨두고 중요한 원고들 - ‘파사쥬 베르크’에 대한 수고, 그와 관련된 타이프원고, 보들레르에 대한 원고들 - 은 당시 국립 도서관 사서였던 조르쥬 바타이유에게 숨겨달라고 부탁하였고, 가장 많은 양을 차지했던 나머지 원고들은 직접 들고 도피길에 나섰다. 벤야민이 직접 들고 다녔던 이 수고는 우여곡절 끝에, 벤야민이 스페인 국경으로 향하기 전 그의 여동생 도라 벤야민*에게 전달되었다. 도라 벤야민은 1941년, 벤야민과도 교류가 있었던 변호사 Martin Domke를 통해 미국에 있는 아도르노에게 전달되었다. 1949년 아도르노가 독일 프랑크프루트 대학 교수로 임명될 때 독일에 가지고 와서는 프랑크프르트에 있는 아도르노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 아도르노는 이 두 원고에 포함된 글들을 묶어서 1950년에 <1900년대 베를린 유년시절>을 출판한다. <유년시절>이라는 제목으로 이 글들이 묶여 출판되게 된 첫번째 역사다. 이렇게 활자로 출간된 이후 이 수고들의 운명도 흥미롭다. 아도르노는 이 책이 출간된 후 이 원고 중에 섞여 있었던 소위 "Stefan Exemplar"를 당시 영국에 살고있던 벤야민의 아내 "도라 소피 Morser"에게 벤야민의 아들 '슈테판'이 원한다면 보내겠다고 하면서 보내주었다. (벤야민의 이 글의 초벌이라 할 수 있는 '베를린 연대기'는 그의 아들 슈테판에게 헌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후 이 원고는 슈테판 벤야민의 미망인인 Janet Benjamin이 다름 슈타트의 Klaus Doderer에게 선물로 주었고, 2003년 경매에 나와 다른 이에게 팔렸다.
기센 타이프 원고라 불리는 세번째 원고는, 아마도 벤야민이 출간을 위해 출판사에 보냈던 원고로 추정되는데, 총 30개의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Martin Domke가 몬트리올의 고서적상에게 팔았던 것으로, 그 고서상이 다시 독일 기센 대학 도서관에 팔았던 것이다. 이 타이프 본에는 총 30개의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으며 "무메렐렌"이 가장 먼저오고 "곱사등이 난장이"가 가장 마지막에 있다. 네번째, 시기적으로 가장 마지막인 1981년에 발견된 소위 '파리 타이프원고'는 벤야민이 미국으로의 합법적 망명에 실패하고 산을 넘어 탈출하기 전에 단시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조르지우 바타이유에게 맡겼던 원고 더미 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를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 - 혹은 숨겨- 놓았었는데 1981년 조르지오 아감벤에 의해 발견된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이 네 개의 '수고' 혹은 '타이프원고'들의 단편들은, 거기에 묶여있는 글들의 개수에서도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각 단편들의 내용에서도 서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여러 종이 쪽지들에다 글을 쓰는 벤야민의 글쓰기 습성에 걸맞게 이 수고원고는 각 단편들이 서로 다른 종이에 쓰여져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이 글들의 집필순서는 물론 벤야민이 어떤 순서로 이 글들을 배열하려 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은 타이프로 쳐진 다른 원고들도 마찬가지이다.
* 1950년 아도르노가 편집해 처음으로 출간된 <유년시절>에 실린 글은 총 37개였다. 이후 발견 혹은 발굴된 4편이 추가되어 <유년시절>은 벤야민 선집 Gesammelte Schriften 제4권으로 출간되었고, 나중에 추가로 발견된 <유년시절>의 다른 판본은 선집 제7권으로 출간된다. 이 글의 복잡한 출간역사에 대해서는 W.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2, Editorischer Bericht와 Davide Giuriato : Mikrographien. Zu einer Poetologie des Schreibens in Walter Benjamins Kindheitserinnerungen (1932-1939), Wilhelm Fink 2006, 특히 7장을 참조하라. 국역본은 선집 제 4권에 실린 <유년시절>을 번역한 것이다.
*벤야민의 여동생 도라 벤야민은 국민경제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베를린 봉제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그는 죽을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고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사회사업을 하고 있었다. 벤야민이 파리에 망명했을 때 그와 한동한 함께 살았는데,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때 1942년 스위스로 탈출해 그곳에 머무르다가 1946년 취리히 병원에서 사망한다. 쟝 미셀 팔미어, 104쪽.
*벤야민이 바타이유에게 맡겼던 원고를 국립 도서관 장서 속에 숨겨놓았던 바타이유는 1945년 이를 벤야민과도 친하게 지냈던 변호사 Pierre Missac을 통해 미국에 있는 아도르노에게 전해주려고 시도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 원고는 1947년초에야 파리에 있는 미 대사관 직원 부인을 통해 뉴욕의 아도르노에게 전해진다. 1981년 아감벤이 파리 국립 도서관 바타이유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벤야민의 원고는, 바타이유가 분산시켜 숨겨놓았던 원고뭉치 중의 하나였으며, 거기에는 “기술복제시대 예술작품에 대한 독일어 본과 브레히트 시에 대한 논평, ‘이야기꾼’ 원고와 ‘유년시절’의 다른 판본이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