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손을 크게 다쳤다. 키보드를 두드려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에게 손을 다친다는 뜻은 고장난 총을 가진 군인과 다름 아니다. 손이 곧 무기이고 주력 상품인 사람이 손을 못쓰니 답답하기가 이를데없다. 왼손과 왼팔, 왼쪽 다리를 다치면서 피를 많이 흘렸다. 응급실로 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고 파상풍 주사와 항생제 주사도 맞았다. 약도 먹어야해서 지금 꼬박 챙겨먹는 중이다. 살다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항상 다니는 계단에서 살짝 미끄러지면서 넘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운수 나쁜 날'이었다. 살다보면 종종 그럴때가 있다. 이상하게 일이 안풀리고 여러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성난 파도처럼 다가오는 그런 날. 이 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키보드를 한 손으로 치려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독수리타법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서 타이핑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샤워도 한 손으로하고 로션도 한 손으로 발라야한다. 설거지도 한 손으로해야하고 심지어 운전도 오른손으로해야해서 어색하다. 양 손이 자유롭다는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번에 새삼 느낀다.
현진건의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나는 반대의 경우였으므로 '운수 나쁜 날'이겠다. 운수 좋은 날의 결과가 나빴으므로 운수 나쁜 날의 결과는 좋지 않을까? 괴상한 희망도 가져보았다.
신체부위에서 왼쪽을 거의 모두 다쳤지만, 정말 다행스러운건 오른쪽은 멀쩡하다는 것이다. 만약 양쪽 다 다쳤다면 일도 못하고 크게 불편할뻔했다. 그나마 오른쪽이라도 성하니 천만다행이 아닌가. 오른손잡이라서 더 그렇게 느낀다.
부상을 입은지 며칠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부상이 꼭 나쁜점만 있는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라서 긍정적일 때 비로소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가령,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한탄하면서 한숨만 쉬고 '나에게 왜 이런일이'라는 생각으로 후회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다음 행동과 내 미래까지 악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친것과 무관하게 할 일을 그대로 하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정도 소화하고 있다.
나는 오른쪽을 다치지 않은게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날은 전체적으로 '운수 나쁜 날'이었지만 그 결과물로 오른쪽은 운수 좋았다. 한 손으로 키보드를 치다보니까 속도는 느리지만 깊이있는 글을 쓰게되는 듯하다. 타이핑 속도가 생각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은 한 문장을 쓰는 와중에도 생각을 여러번 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약을 먹고 있으니 당연히 술을 먹지 못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게됐다. 이틀간 한 권 넘게 읽었다. 정말 간만에 몰입해서 독서한 시간이었다.
나는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신체의 자유, 정신적 자유, 문화적 자유.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손이 불편하니 모든 행동이 다 느려진다. 성격이 급해서 실수가 잦던 내게는 꼭 필요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불필요한 행동도 같이 느려지거나 없어지니까 오히려 하루가 더 길어진 느낌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불편한점이 많다. 그러나 나는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려한다. 이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반드시 행복이나 불행만 있는건 아니다. 두 가지는 거의 매번 동시에 찾아오고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지 고르는게 전부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생각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