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의 비교보다 '내면으로의 침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재능이 얼마나 얄팍하고 빈약했던 것인지 새삼 느끼게된다. 이 느낌의 빈도는 점점 더 짧게, 그리고 강하게 다가온다. 20대때만해도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매번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뭘하건간에 말이다. 그것이 운동이든 글쓰기든 책쓰기든 블로그든... 심지어 게임이든 그걸 열심히만 한다면, 그리고 남들보다 더 노력한다면 나는 내 실력을 향상시키고 다른 사람을 앞질러 뭘해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아니면 자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회경험이 쌓이면서 겁이 늘어난걸까? 이제는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생각부터 든다. 그리곤 '그냥 하던 일이나 하자'로 귀결되어 쥐구멍으로 도피하고싶어진다.
요즘엔 내 안에 있는 뭔가가 붕 떠있는 기분이다. 뭘해도 집중이 되질 않는다. 머리가 복잡하다못해 혼잡하고 호기심과 관심사는 많은데 전부다 수박 겉핥는 느낌이다. 이런적이 처음은 아니다. 종종 이럴때가 있다. 1년에 여러번.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되돌아오는 명절연휴처럼 슬럼프도 꼭 그렇다. 연례행사지만 매번 익숙해지질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뭔가를 소화하지 못하면 우울해지는 법이다. 인간에게 '일(work)'이란 단순히 밥벌이가 아닌 그 이상이다. '일'이 단순한 월급벌이에 지나지 않는다면(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직장에서의 트러블과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을 잘해내고싶다는 이 당연한 욕심은 사람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찬 물을 끼얹은듯 축쳐지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글쓰는게 좋아서 글을 썼다. 나는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이타는 소년이었고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으며 인기는 더더욱 없었다. 내가 글을 쓴건 2009년부터였고 그 전에는 일기조차 잘 쓰지 않았으므로 재능이나 운명처럼 글을 쓴건 아닌 듯 하다. 블로그를 하면서 인기를 얻게되니 글쓰기에 더욱 관심이 갔고 나는 여전히 하고싶은 말이 많았기에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게 70% 이상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SNS 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 최신 매체들이 많아지면서 좀 더 화려하고 보다 집중력있는 멀티미디어가 인기다. 특히 유튜브가 가장 인기이고 동영상이라는 매체는 실상 글보다는 훨씬 더 직관적이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SNS 스타나 해볼까'처럼 오만가지에 관심이 간다.
SNS에는 온통 행복과 사랑, 멋진 풍경과 비싼 차, 깔끔하고 좋은 집 투성이다. SNS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하게되면 상대적으로 불행함을 느끼게되며 이 불행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행복해야하고 더 사랑해야하며 더 좋은 풍경과 더 비싼 차, 더 깔끔하고 더 좋은 집에서 지내는 웃는 표정의 셀카를 올려야만한다. 남들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 보여주기 위한 인생. 행복의 척도가 다 다르므로 이것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싶진 않지만, 연기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연기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들과의 비교보다 '내면으로의 침잠'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한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대여섯번은 인스타그램을 들락거린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에는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잘 운영하던 블로그를 반으로 쪼개 티스토리와 네이버로 나누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그걸 이제 다시 하나로 합칠려고 하고있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기사도 쓰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하고 여러잡지에 칼럼이나 여행기도 기고한다.
정말 오래도록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해본 결과, 돌고 돌고 또 돌아서 다시 글쓰기로 가야한다는게 내 결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고 내가 그나마 잘하는 일 역시 이것 뿐인 듯 하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든 나는 세계최고가 아니고 아마 앞으로도 세계최고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나마 잘하는 것을 갈고 닦는 장인정신, 그리고 '하는거나 잘하자'는 어떤 현실 타협적인 마음가짐이 지금의 심정이다.
'초심'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초심이란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예를들어 고기를 한 번이라도 맛 본 사람은 절대 그 맛을 잊을 수 없게되듯이 시간이 지나면 초심과는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초심보다는 '원점'이라는 단어를 좀 더 좋아한다. 스케이트 선수가 한 바퀴를 돌고 두번째 바퀴를 도는 시점이랄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