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정해진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기주도적 마인드

by 남시언

우리 할머니께서는 충실한 불교신자로서 매년 절을 오가면서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해 부적을 사고 앞으로의 행복을 기원하신다. 무릎이 좋지않아 걷는것도 힘든 마당에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야만 갈 수 있는 절을 그토록 찾으신다. 삼재, 삼재부적, 차부적 등 1년 부적 값만해도 만만치가 않고 거기에다가 제사 등 여러가지 풍속들까지 치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타로카드나 점, 운세 등을 점치면서 자신의 미래를 다른 사람 또는 신에게 묻는다. 마치 영화 시나리오처럼 일생은 정해져있고 미래도 결정돼 있는 반면에 현재로선 내가 미래를 알 수 없는 까닭에 나쁜 미래가 있으면 방어하고 좋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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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이나 타로카드를 믿지 않는 입장이지만, 종교 활동이나 미신, 타로카드 등을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위 희망고문이라고 부르는 희망사항은 사실 꼭 필요한 것이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하는가? 희망이 없어지면 살아갈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매사에 조심하고 침착하게 상황판단을 하는건 나쁜 일이 아니다. 어떤 행위든 그것을 통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은 종교활동이나 부적이 아니라 '미래는 정해져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미래가 정해져있다고 믿는다면, 예를들어 '당신은 30대 중반에 결혼할 겁니다'라는 점이 나왔고 그것을 철석같이 믿는다면, 우리는 30대 중반까지 결혼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이뤄질 일인데 뭣하러 노력하나? 허무주의에 빠져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행동은 인생에 대한 무책임이라는 죄를 피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통된 이야기가 존재한다. 가령, '당신은 보통 소심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지만 때로는 용기있게 일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 이런것들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할만한 그런 스타일이 많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100% 무시할 수 있을만한 강심장은 드물다.


미래를 미리 점치는 것은 조금의 희망과 용기,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피터지는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 미래는 결코 정해져있지 않다. 그 누가 감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단말인가?


점쟁이나 스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질 이유는 없다. 책임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미래를 정하는건 사소한 점이나 카드 따위가 아니라 현재의 '자신'뿐이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건 쉬운 일이다. 반면에 미래를 자신이 만들어가야한다는 생각은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까다롭고 어려운 일을 완수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꿈꾸던 미래를 현실로 마주할 수 있다.

내가 만약 20대 초반에 점을 봤다면 '글'이나 '책'과는 완전히 무관한 미래가 청사진으로 제시됐을 것이다. 그때는 나조차도 내가 글쟁이나 책을 써서 작가가 될 수 있을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들조차 내가 작가가 된걸 아직도 의아애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고 지금 마주하는 현재다. 유명세는 논외로 하더라도 나를 작가로 만든건 점이나 카드가 아니라 작가가 되기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공부했던 그 시간들이다. 그리고 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운도 일부분은 실력이다.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이에게 운은 작용하지 않는다.


인생은 다른 사람이 책임져주는 객체가 아니므로 자기 스스로 행동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자기주도성. 자기주도적 삶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마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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