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없는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by 남시언
crosswalk-407023_1920.jpg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그러나 비는 단 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온 세상이 습기로 꿉꿉해보였다. 무작정 걸었다. 땀이 삐질 났다. 그러다 문득 하늘이 보고싶어서 고개를 올려 하늘을 봤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마치 내 표정같아서 피식 웃었다.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주변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중학교 때였나? 풋내기 사춘기의 반항심으로 가출을 한 적이 있다. 이유는 별게 없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가출이란걸 해보고싶었던 것 같다. 무작정 집을 나왔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날은 부쩍 어두워져서 곧 해가질 참이었다. 두꺼운 옷을 여미어봐도 파고드는 칼바람을 막는건 불가능했다. 춥고 배고팠다.


무작정 걸었다. 갈 곳이 딱히 있었던건 아니다. 집 근처를 몇 바퀴쯤 돌았을까. 어두컴컴한 밤이 찾아왔다. 매우 추운 날씨여서 동네엔 인적조차 드물었다. 이름모를 집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나오고 있었고 바로 옆집에서는 맛있는 찌개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그 연기나는 굴뚝 앞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한 곳에서 오래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화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진거라곤 두 다리 뿐이었으니 계속 어디론가 걸어갔다. 한겨울의 밤은 너무나도 고요해서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쉴새없이 깜빡였다.

'너는 항상 바쁘구나'

내가 말을 걸 때 마다 신호등은 색깔을 바꾸었다. 신호등이 깜빡임이 마치 사람이 눈을 깜빡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혹시 저 신호등 안에 사람이 있는건 아닐까?'

이상한 상상을 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를 건너도 갈 곳이 없었던 까닭에 다시 뒤돌아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뒤를 돌아 빨간불이 될 때 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초록불이 되면 다시 건너간다. 똑같은 횡단보도와 똑같은 걸음걸이로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진자운동을 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보낸 후 부모님이 잠들었을거라고 생각하고 몰래 집 문을 연 다음 집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뜬 눈으로 계셨고 나를 보고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방 안은 크리스마스의 새벽처럼 어두웠고 고요했다.


종종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옛 생각이 난다. 목적지가 있다는건 매우 기쁜 일이다. 목적지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본 사람이라면,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왜 빨리 바뀌지 않는지 묻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뀌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우산 하나로 끊어진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