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걸 관두고 싶을 때

토해내는 글

by 남시언

진절머리가 난다. 참을 수 없을만큼 가벼운 인간관계나 일, 10년을 넘게 기록을 남겨온 블로그나 내 시간을 온통 빼앗는 SNS도, 카카오톡 메신저도, 쉴새없이 돌아가는 선풍기와 365일 쉬지않는 냉장고도 싫어진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모든걸 관두고 싶을 때가 있다.


무기력하다. 날씨 탓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6월일 뿐이다. 한 여름도 아니란말이다. 입 맛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딱히 떠오르진 않는다. 요즘엔 그냥 배가 고프니까 배가 고프지 않기 위해 먹는 기분이다. 마치 반복하는 습관처럼.


요즘엔 뭘해도 딱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놀이기구라도 타야하나?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게 회색으로 얼룩져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방전된 것일까?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번아웃증후군인가? 나는 직장인도 아닌데? 나는 100%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원할 때 일하고 원할 때 쉴 수 있는데...? 그런데도 상태가 이렇다니? 합리적인 계산이 안된다. 마음 같아서는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양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책상이라도 엎고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용기조차 없다. 그간 지켜야할 것들이 많이 생겨버렸다. 당장 눈 앞의 모니터라도 지켜내야한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게 일상이다. 시간은 또 왜 이렇게 잘 가는지. 나는 뭔가 내 인생을 바꿔줄만한 파괴적인 터닝포인트의 기회를 수동적으로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건 아닐까? 나는 지금껏 내가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까다롭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떻게될지, 어떻게 해야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건 처음부터 몰랐고, 여전히 모르고, 아마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이게 내 한계라는걸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날 순 없으니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모든게 리셋된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러면 난 또 이 기분을 잠시 잊은채 일상에 푹 빠져 원래 하던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분은 잠시 커튼이 쳐진 것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머리든, 심장이든, 가슴이든 어디든 숨어있다가 자기가 원할 때 불쑥 나타나 괴롭힘을 시작할 것이다.


문제가 어려운건 열심히 풀면 된다. 그러나 문제가 뭔지를 모를땐 심각해진다.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살았나 싶다. 뭐 하나 정리된게 없다. 나 자신의 생각조차 정리하지 못했는데 그 무엇을 정리할 수 있을까? 왜 이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이렇다는걸 있는 그대로 쓰고싶을 뿐이다. 무리하게 술을 삼킨 사람이 술을 토해내듯 잠깐의 글을 토해내면 내 속도 약간은 편안해진다. 글은 이래서 좋다. 빠르고 허심탄회하게 토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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