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거울 속의 겁쟁이

by 남시언

강릉 바다를 다시 찾았다. 날씨가 몹시 좋았다. 그래. 이런 날씨엔 역시 여행이지. 여행길은 아니었지만, 여행길의 포근함을 잠시나마 체험했다. 강릉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황홀경에 빠져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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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계속 바다가 보고싶었다. 기차를 타고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올 참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심란할 땐 역시 바다다. 하지만 막상 바다를 봐도 심란한 마음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 앞에서는 스위치가 바뀌면서 정신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다녀오게 되는 것이다. 잠깐의 마취제일 뿐, 근본적인 원인해결이나 잡초의 뿌리를 뽑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집으로 되돌아가는 새벽의 고속도로는 익숙한 길이었다. 2년전에도 비슷한 시간에 간 적이 있다. 멀리 떨어져살던 친구를 만난것마냥 반가웠다. 바다는 말이 없다. 언제나 그대로였고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다. 고속도로의 길도 똑같았다. 그리고 나도 2년전과 똑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속물이 되어버린걸까? 지금 달리는 길처럼 나는 그때와 똑같았다.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알 길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달려나갈 때 나만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아 우울해졌다. 나는 목석이고 시간은 화살같다고 느꼈다.


음악을 틀어두고 운전을 한 것 같긴한데 이런저런 상념에 휩싸여서 앞으로 달리기만 했다. 어떤 음악이 나왔는지 기억이 안난다. 음악을 틀었는지도 모르겠다. 대관령의 짙은 안개처럼 조급함이 내 온 몸을 짓눌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년 사이에 많은 변화를 겪곤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2년동안 새 책을 쓴 것도 아니고 뭔가에 도전해서 성취한 것도 없다. 지킬게 많아지면 겁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글이 좋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엔 할 말도 없다. 거울 속엔 겁쟁이가 한 명 서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너같은 새끼가 그럼 그렇지'라며 좋아할 것이지만, 그런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나를 진정으로 피곤하게 한 것은 600km의 운전도, 새벽이라는 늦은 시간도, 강의도 아니었다. 2년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에 구토가 쏠렸다. 그동안 나는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명확한 사실은 20대 후반때처럼 정력적이지 않다는 것 뿐이다. 먹고 살아야된다는 핑계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좋은 소스였지만, 결국 나 스스로도 감염됐다.


안개낀 고속도로를 달리는 3시간의 운전은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시간이었지만, 정리되진 않았고 머리만 복잡해졌다. 뭔가 일탈을 하고싶은데 마땅한걸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 제일 답답하다. 이건 A가 문제고 저건 B가 문제가 된다. 술을 잔뜩 마셔도 잠이 오질 않아 뜬 눈으로 새벽을 봤다. 2년간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갔나. 같은게 아니다. 결국엔 뒷걸음질이다. 2년만의 바다는 2년 전보다 더 형편없는 인간을 푸른 얼굴로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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