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글을 쓰나
검은화면에 흰색으로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멍하니 바라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생각에 잠겨 흐리멍텅한 눈으로 바람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 지났다. 생각은 정리되긴 커녕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되면 좋고, 안되도 그만. 식의 마음가짐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원하거나 바라는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반드시 쟁취해야하는 불나방이었다. 그래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피곤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단 둘 뿐인 술자리에서 친구는 나에게 "그만 좀 내려놓아보라"고 조언해주었지만, 며칠, 아니 몇시간만 지나면 다시 오뚜기처럼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뭔가를 열심히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 압박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출발지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괴롭히는, 악마조차 고개를 가로로 흔드는 셀프 새디스트인지도 모른다.
인생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자 매우 슬픈일이다. 나는 빠르게 꿈을 이루고 싶었으나 여태껏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낙관적으로 해석하거나 비관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을 다그치는 일이었다. 사실 그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는게 쉬우니까. 이제는 꿈을 이룰 수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모든게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기만하다. 아니 그 전에 꿈이란게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이제는 꿈타령도 진부하고 지겨운 나이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다니며 눈치보며 밥을 먹던 대학생이었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차이를 계산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 출발지는 밑바닥이었으므로 여전히 올라야할 계단은 태산같다. 전심전력으로 힘겹게 몇 계단 올라온 다음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봤던 나는, 피로와 자기부정에 휩싸이고 스트레스와 신경질적 조울성,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이함으로 얼룩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다못해 흔해빠진 사람일 뿐이다.
누구나 세상의 중심에 굳게 서서 자기중심적 사고로 살아간다. 지구는 나를 위해 움직여야한다. 옆 집에서 사람이 죽는 것보다 내 손톱밑에 가시가 더 아프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부터는 인생의 패턴이 단순해진다.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단순한 일상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화려하고 호화로운 것이 언제나 좋은건 아니다. 길거리에 핀 야생화 한 송이에서도 행복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단조롭다는건 좁은 범위에서만 계속 반복된다는 뜻이다. 전화번호부에는 수 천개의 연락처가 있지만, 최근 통화목록에는 단 몇 개의 이름외에는 찾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하게 불러대는 이름의 '일상'이다.
재미있는 세상이라서 역설적으로 재미있는게 없어진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인간이야말로 가장 불친절한 인간이듯 모든게 재미있는 세상은 아무것도 고를 수 없는 정지상태에 빠진다. 호기심 많은 사람은 손발이 고생하게되는데, 이것저것 시도하지만 그 무엇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특성 때문이다. 이게 누구 얘기냐면, 바로 내 얘기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가, better place를 만들고 싶어진 다음 도시를 변화시키고 싶었다가 주변 사람들만이라도 개선해주려 했었고 이제는 나 자신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금껏 블로그에 수 천 개 이상의 글을 썼는데, 과연 그 중에서 오래도록 남을만한 '진정한 콘텐츠'가 몇 개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잠깐 소비하고 버려질 쓰레기를 만들어낸건 아닐까? 어떤 큰 목적과 제대로된 목표치, 그리고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가진, 그러니까 신념을 갖고 만들어낸 보석같은 글이 아니라 데드라인에 쫓기고 푼 돈에 유혹당한, 사탄의 손길에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당하면서 아무렇게나 막 휘갈긴 거적떼기 같은 글은 아닐지. 그렇다면 이제 이런 질문이 남는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나? 무엇을 위해 콘텐츠를 만드는가? 도대체 어떤걸 완수하고싶은건가? 누구를 위한 삶인가? 결국 나는 왜 살아가나? 어쩌면 내가 쓴건 글이 아니라 인터넷에 싸지른 똥일지도 모른다. 이 글 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