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은 슬픈날

비오는걸 싫어했던 소년의 이야기

by 남시언

나는 나 자신을 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따금 꼭 그렇지도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원하는게 뭘까? 내가 바라는건 뭘까? 나조차도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여러가지로 혼란스럽다. 신경써야할건 인기 가수를 기다리는 팬클럽 현장처럼 밀려있다. 지금 당장 신경쇠약에 걸린다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새벽에는 좀 많이 오더니 오후가 되니 다소 약해졌다. 하늘은 흰색이라기보다는 회색에 가까웠고 공기는 습기로 가득했다. 왠지 밖에 나가면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서 창문도 열지 않은 하루였다.


저녁인데도 커피 한 잔을 또 마셨다. 오늘 하루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밥 먹는 시간을 빼면 계속 뭔가를 했다. 뿌듯하기는하다. 하루를 뭔가 엄청 알차게 보낸 느낌이지만, 피곤하고 피로하다. 이 모든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그러고보면 나는 나를 너무 혹사시키며 사는건 아닐까라는 이상한 생각도 든다. 열정적으로 살아야한다는 마음가짐과 좀 더 편하게 지내자라는 마음가짐이 매일 싸움을 벌인다. 누가 이길진 나도 모르겠다. 그냥 모든게 복잡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이 생각하게된다. 걱정하지 말아야지라는 걱정을 하면 할수록 더 걱정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밥을 먹었더니 배가 부르지만, 마음이 허하다. 비가와서 그런걸까?


아무것도 하기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를 막 하고싶다던지, 잠을 자고 싶은데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허무맹랑한 시간을 보낸다던지, 뭔가 가슴안에 꽉차서 터질것만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던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보통날. 어쩌면 비가 오는날.


adult-1867665_1920.jpg


나는 어릴때부터 밖에서 노는걸 좋아했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이 싫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렇다.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 중 한명은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했다. 왜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조용하고 차분해지면서 분위기가 있다나 뭐라나... 그땐 그걸 이해할 수 없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황순원의 기념비적인 소설 <소나기>에서는 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비를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로 비는 신발이 젖고 우산을 들고다니다가 잃어버리고 옷이 젖고 지나가는 차에서 튀는 물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밖에 세워둔 내 차는 간만에 비로 샤워를 할 것이다. 공기가 씻기고 땅은 촉촉하게 젖어든다. 비 오는걸 무척 싫어했던 한 소년은 이제 아저씨라 불리고 비가 오든 말든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무신경한 꼰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비 오는날은 슬픈 날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터넷에 싸지른 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