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절이 싫다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 될 순 없다

by 남시언

이런말을 하면 패륜아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명절을 꽤 싫어한다. 어릴때는 정말 무지하게 싫어했고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좋은 쪽은 아니다.


사실 어릴때의 명절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꼬맹이의 눈에 비친 명절이라곤 제사 음식을 먹고 친척들의 얼굴을 잠깐 보는 것외에는 별다른게 없었다. 그냥 학교를 안간다는게 다른점이었지만, 나는 학교에 가는걸 아주 좋아했던 학생이었다. 물론 공부쪽은 아니었고 그냥 놀러가는 학교였지만.


난 학창시절 집보다 학교가 훨씬 편했다. 집은 불편했고 밥도 맛 없었고 친구들도 없었고 심심하고 따분하고 재미없는 공간이었다. 학교 역시 비슷했지만 재미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어디로든 눈치보지않고 갈 수 있었고 뭔가 나만의 삶을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차라리 집보다는 학교가 나았던 것 같다. 물론 공부를 안해서 나머지 공부를 할 시간이면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명절이라고 해봤자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건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 누구 집에 가고 또 다른 누구는 누구 집에 가고... 호칭은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누가 고모고 누가 이모인지도 잘 모르는 철부지에게 명절이란건 복잡하고 고리타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명절 음식이 내 스타일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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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고 예천 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명절 때 오히려 도시로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당시에는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갔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좀 늦어지는 바람에 총알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갔었고, 당시에 따따블로 택시비를 치뤘던게 기억난다. 그때가 아마 내가 10살 미만이었을 때인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그때 이후로 더 이상 명절에 한복을 입을 일은 없었다.


어렸던 나는 명절이 왜 있는지 궁금했다. 명절이란건 누가 만들었을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친척집에서도 명절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 같은건 없었고 어른들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왜 만들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면서 명절을 보낸다는게 어린시절 나에겐 모순되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혼란이 오기도 했다. 물론 이 질문을 입 밖에 꺼냈다간 명절 분위기가 싸해졌거나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구박받았을 것이다. 당시에도 인터넷이 있었다면 알 수 있었으려나.


인중 근처에 솜털조차 없는 소년의 눈에 비친 명절은 화투를 치다가 말다툼을 하거나 술에 잔뜩 취한 누군가가 평소에 서운했던 마음을 풀어놓다가 싸움을 하는것으로 비쳤다. 무엇보다 어른들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까지 퍼부었었기 때문에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예를들어 공부는 몇 등이냐, 여자친구 있냐 등이었다. 여자 손도 못잡아본,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라는 어떤 성별 자체에 대한 개념이 없는 꼬맹이에게 여자친구라니?


어른들은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에게 질문하기 마련이다. 어린시절 나는 어른들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저씨가 된 지금의 나도 아마 힘들지않을까 생각한다.


요즘에는 명절이 많이 간소화되고 간략해지는 분위기라서 예전처럼 명절이 따분하거나 복잡하진 않다. 직장에 출근해서 근무를 해야하는분들도 많고 각자 살기 바빠서 명절이란거 자체가 그냥 휴일이나 빨간날 정도로 정착되는 것 같다. 예전처럼 우르르 모이지도 않고 잠깐 모였다가도 다들 흩어진다. 각자 바쁘고 물론 나도 친척들과 오손도손 모여 전 부치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명절은 보내본적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라고해도 못할 것 같다. 해본적이 없으니까.


나는 명절이 싫었지만 명절이 싫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만 명절을 싫어하는 이방인이 되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온세상이 화목하고 다들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데 나만 싫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내 세계관에서 나는 이상한 아이였고 문제아임에 틀림없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나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명절이라고해서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식당에서 일을 해야하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수거해야하며 누군가는 택시를 몰아야한다. 어릴때엔 이 사실을 몰랐다. 명절이 꼭 나에게만 특별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이름모를 어느 노인은 오늘도 연락 한 통 없는 자식을 기다리며 맛있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밤을 지새울지도 모른다. 나와 비슷한, 또 다른 누군가들에게도 명절은 지루하고 따분하고 피곤하며 재미없고 고리타분하다가 다가오는게 공포일 정도로 소름끼치도록 싫어지는, 그런 날이다.


명절은, 어쩌면 슬픈 이에게 더 큰 슬픔을 주는 악마같은 기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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