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값은 얼마인가?
이 글에서는 프리랜서와 크리에이터를 같은 선상의 개념으로 이야기합니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고 한다. 구직자들의 소원은 출근이지만 회사원들의 소원은 사표인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많은 직장인이 프리랜서의 삶을 꿈꾼다. 프리랜서는 겉보기에 화려하다. 자유롭고 희망차며 매일이 즐거워 보인다. 꿈과 맞닿은 일을 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새벽까지 일하고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멋진 해변을 앞에 둔 5성급 호텔에서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일하는 모습. 출퇴근도 없고 짜증 나게 하는 직장 상사도 없어서 너무도 행복한 하루. 프리랜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보이는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나는 지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프리랜서라는 환상을 박살내고 크리에이터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프리를 선언한 직후부터는 세상의 모든 직업군을 섭렵할 수 있다. 작가, 디자이너, 미술, 음악, 예술가, 마케터, 블로거, 기자, 독특한 영상 제작을 할 수도 있을 테고 파티나 행사를 기획할 수도 있다. 주식투자상담사라든지 부동산 관련 업종, 자영업을 겸할 수도 있다.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자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내겐 프리랜서의 삶에 관해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는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20대 직장인, 퇴직을 앞둔 회사원, 프리랜서가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부모님, 심지어 퇴직한 임원도 있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장단점을 고민한다. 독립 후 해야 할 일들의 목록도 있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그럴싸한 사업 아이템도 갖추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꿈을 찾고 싶어요!’
프리랜서에게 일이란 곧 돈이다. 일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잔고는 불어난다. 하지만 일감을 얻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세상은 당신이 프리랜서인 걸 모르고, 당신이 무엇을 잘 해내는지 알지 못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다 한들 사람들이 모르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일이 없으면 프리랜서는 곧장 백수로 전락한다. 자기 PR과 개인 브랜드 구축, 자기 자신에 대한 셀프 마케팅은 지루하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고, 그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성공적 일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 불투명한 미래가 사람을 급하게 만든다. 그 기간 동안 세상은 바뀌고 프리랜서를 꿈꾸던 많은 이들이 제풀에 지쳐 다시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다급하게 장사를 시작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선택이 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몇 년 뒤에 다시 꿈을 갖고 잠시 프리랜서 세계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또다시 빠져나간다. 밀물과 썰물 같다.
겨우 얻은 일감의 가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낮다. 당신에게 일을 맡긴 고객은 당신의 생각보다 두 배 정도의 품질을 원한다. 하지만 비용은 반값이다. 당신이 100만 원을 생각했다면 200만 원어치의 일을 해야 하고 입금내역은 50만 원이라는 얘기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계약이 성사되어 있다. 정신을 차려보면 돈도 안 되는 일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프리랜서는 출근이 없어 행복하지만, 퇴근이 없어 불행하다. 고객은 아침 7시든 밤 11시든 전화한다. 문자메시지, 이메일은 중독자처럼 상시로 확인해야 한다. 멋진 여행지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밥 먹을 때도 일 생각, 가족들과 즐겁게 지낼 때도 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퇴근 후 옷을 벗어던지고 편안하게 누워 TV를 감상하는 직장인들의 저녁과 비교된다. 그 사람의 일을 대체할 수 없다는 특성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프리랜서 또는 크리에이터는 병에 걸리거나 몸이 좋지 않은 상태를 경계해야 한다.
프리랜서의 일이란 건 당신 그 자체를 판매하는 일이다. 당신의 아이디어, 전문능력, 경험 모두가 상품이고 비용으로 책정된다. 당신이 세상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린다고 하더라도 그 그림으로 단돈 1원도 벌 수 없으면 프리랜서엔 적합하지 않다.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아이디어나 사업 아이템은 프리랜서에겐 독이다. 프리랜서에겐 당장 성과가 나서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지금 밥 먹을 돈도 없는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 ‘뭐’가 자신의 커리어로 쌓이고 프리랜서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일이어야만 한다. 이것저것 다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니까. 더불어 시간을 지체해서도 안 된다. 고민할 겨를 따윈 없다. 그런 건 진작에 다 해서 와야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 고민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일이다.
프리랜서는 1인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외로운 직업군이다. 일 뿐만 아니라 고독과도 싸워야 한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알코올 중독자들도 많다. 지금껏 관심 없던 회사의 회식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그리워지고 동료애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의 하루를 보내면서 입으로 쓴맛을 다셔야 한다.
프리랜서들이 가장 원하는 게 있다면 고정수입일 것이다. 들쭉날쭉한 현금 흐름과 수입구조를 갖춘 프리랜서에겐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절실하다. 고정수입을 원하는 이유는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예측을 할 수 있어야 경제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가 있는데, 변동 수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프리랜서에게 고정수입이 있다는 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갖췄다는 뜻이다. 고정수입을 얻으려면 중장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어야 할 테고, 이 서비스는 프리랜서 자신이 개발해야 한다. 회사에서 수익모델을 개발하는 것과 하나도 다른 게 없다. 프리랜서는 서비스를 스스로 팔아야 하는 직종이며 그 서비스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낡고 진부한 서비스는 팔리지 않는다. 매 업무 미팅 때마다 색다르면서도 독특한 아이디어로 서비스 영업을 해야 하는 까닭에 공부를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와 있는 세상이다. 여러 프리랜서가 이 부분에서 무릎을 꿇는다.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커리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특성이 있으므로 관행이라든지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으로 일 처리를 해서는 곤란하다.
새로운 도전은 설레지만 리스크도 있는 법이다. 집 안 보다는 길거리에서 사고 날 확률이 높고, 길거리보다는 도로에서, 도로보다는 고속도로에서 죽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집 안에만 있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고 불확실한 상황들을 헤쳐나가는 모험정신이 필요하다.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물어볼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새로운 분야에서 태어나기 마련이다.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프리랜서의 핵심 능력은 시간 관리다. 프리랜서의 시간은 칼보다 더 날카로워야 한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고 일을 안 한다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당연히 없는 탓에 나태해지기 쉽다. 조금만 나태해지면 퍼포먼스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프리랜서에겐 시간이 곧 돈이다. 현금보다도 시간을 잘 써야 한다. 불필요한 작업을 하지 않는 건 기본이다. 특히 초년생 프리랜서들이라면 공감할만한 ‘공짜로 해주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일하는 비용은 스스로 결정하는 거다. 서비스에 자신이 있고 또 그만큼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비용을 올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고객은 오히려 비싼 서비스를 선호한다. 시간당 2만 원을 받는 강사와 시간당 50만 원을 받는 강사를 대하는 자세는 강의 내용과 무관하다. 똑같은 말과 똑같은 내용으로 똑같은 시간 동안 강의를 해도 수강료 50만 원짜리 강의 쪽이 만족도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푼 돈에 많은 걸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짜 일을 해주게 되면 수입은 0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된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으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시장에서 당신의 이미지가 전문가나 일 잘하는 프리랜서로 소문나야지, 공짜 일이나 매우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소문나면 부도 직전까지 몰린다. ‘공과 사’를 확실하게 분리해야 한다. 한 번 해주기 시작하면 상대방은 처음을 빌미로 계속해서 요구할 것이고, 당신은 ‘이번만…. 이번만….’하다가 허송세월 다 보낸다. 공짜 일을 해주느니 그 시간에 여행을 떠나는 게 백 배 낫다.
이 모든 걸 감내할 각오가 되어있다면 프리랜서에 도전해볼 만하다.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기회는 인생에 그리 많지 않다. 프리랜서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매우 능동적인 직업군이다. 잘돼도 본인 탓, 안돼도 본인 탓이니 변명할 여지 같은 건 없다. 프리랜서는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돈을 번다. 그러나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해서 항상 즐거운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시길.
혹시라도 지금 글쓰기,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 제작쪽에 흥미가 있고 재미를 느낀다면, 그건 좋아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돈과 무관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막다른 골목의 심정으로 크리에이터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는 두 번 세 번 고려해볼 길 권한다. 개인으로서 돈을 버는 건 조직에서 돈을 버는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어렵다.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높은 수익을 올리는 프리랜서 또는 크리에이터는 실제로 극소수이며 대다수는 푼 돈도 겨우 버는 게 현실이다.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오래전에 콘텐츠 관련 공기관에서 근무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때는 콘텐츠 업계의 직장인이었고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기획하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일을 한다. 현재의 나는 직장인일 때보다 잠을 덜 잔다. 양으로만 치면 기관에서 일할 때 보다 일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있다. 조직에서 근무할 때는 체계라는 게 있지만 프리랜서는 그 모든 걸 혼자서 다 해야 하는 까닭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고 연구했던 프로젝트를 마음껏 실험해볼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상대적으로 내 미래는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하기 위해서 합당한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안정적인 직장과 사회적 위치, 각종 금융 혜택 등 조직에서 얻을 수 있었던 많은 이점들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이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하다. 내가 원하는 인생,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느낌으로 하루를 보낸다. 직장인일 때 내 어깨는 축 처져있었고 땅을 보면서 걸었다. 지금은 앞을 본다. 나는 자유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세계관>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마치면서
3월부터 매주 월요일에 연재해온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세계관>을 사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성원과 의견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연재해왔습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세계관> 브런치 연재는 그동안 브런치에 써 왔던 글 중 콘텐츠 크리에이티브와 관련된 핵심 꼭지들을 엮어 재편집하고 수정하여 게시하였습니다.
연재가 마무리되면서 아쉽게도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세계관>은 끝이 나겠지만, 브런치에는 주기적으로 제 생각들과 경험들을 정리하여 글을 올리고 있사오니 제 글이 흥미로우셨다면, 매거진이 아닌 제 브런치 자체를 구독하시면 편하게 글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개인으로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남시언 콘텐츠랩>에서 콘텐츠 제작 및 편집, 영상 촬영 편집, 사진 촬영/편집/보정 등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전반적인 강좌들과 실제 유료 강연에서 이야기했던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팁 및 방법론 등에 대해서 올리고 있으니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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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세계관>을 탐독해주신 독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