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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Jan 22. 2020

최악의 단점과 최고의 장점에 대해서

찰스 디킨스의 기념비적인 책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지나고보면, 최악의 시절이 최고의 시절인 때가 있습니다. 서른 중반에 되돌아보기로 저의 최악의 시절은 20대 중후반 혹은 학창시절이거나 어린시절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2012년에 <1인분 청춘>이라는 첫번째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20대를 겨냥한 투박하고 거친 느낌의 자기계발 서적입니다. 판매량이 저조했던 까닭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이지만, 저에겐 의미있는 책이죠. 8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지금의 저는 많이 달라졌고, 책의 내용들 중 일부를 수정하고싶을만큼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세계관이 180도 바뀌었고 경제관념에 약간의 눈을 뜨면서, 세상을 조금은 직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뜨겁게 달아오른 냄비같은 감성보다는 차가운 칼날같은 감정이 가슴에 들어와 앉은 느낌입니다. 세상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할까요? 이제는 예전 <1인분 청춘>같은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땐 감정에 벅차올랐던 시절이었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여야만하고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저는 영화의 주인공이면서, 이 시나리오에서 저에게 실패란 있어서는 안되었죠.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고 악당은 끝끝내 망하는게 이 영화의 불보듯 뻔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영화가 아니었으며 저는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끝끝내 망하는 그 악당이야말로 '내'가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드는 요즘입니다. 



저는 독불장군처럼 무언가를 강요하고 강제하면서 잔소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스타일에 끌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저는 이러한 개인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며 저에게 마음을 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하는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좋아하든말든. 나는 나. 이게 저의 마인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좋아하는 동시에 싫어하기도 합니다. 좋아했다가 싫어할 수도 있죠. 인간관계는 그래서 어렵지만 재미있습니다.


최악의 단점이 최고의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점을 고쳐야만하는, 말하자면 틀린 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어떤것을 잘 활용하면 장점으로 극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잔소리하는 성격이 단점이라고 하더라도, 이걸 친구나 주변 사람이 아니라 꼭 필요한곳에 전문적으로 해준다면, 훌륭한 강사나 컨설턴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불과 얼마전에도 200명이 넘게 모인 세미나실에서 제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강의를 했습니다. 


등불은 어두워야 빛을 낼 수 있습니다. 등대의 소중함은 어두울 때 알 수 있죠. 맑은날에 등대는 시야를 거슬리게하는 장애물일 뿐이지만, 어두운 밤에는 되돌아갈 길을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장점조차 상황에 따라서는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강의 요청이 단 한건도 없었던 시절에도, 인터넷서점에서 프레젠테이션과 관련된 책들을 사서 읽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그렇게 해야만 될 것 같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일 없는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당시 저에겐 기회가 절실했습니다. 특별한 기회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죠. 아무도 저를 몰랐고 저 역시 유명해지기엔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죠. 저는 우연하게 찾아올 기회를 너무나도 바랬던 까닭에 아주 사소한 기회라도 놓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한다고 자신을 압박했습니다. 준비되어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24시간 시동이 걸려있는 자동차같은 시기를 오래도록 보냈습니다. 그런 시기를 오래도록 겪으면서 저는 많이 지쳤습니다.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던 저는 새벽에 종종 중대장님에게 호출을 당했는데, 그 이유는 실수로 PC나 프린트를 종료하지 않고 복귀한 까닭이었습니다. 

"너희들도 잠 못자고 계속 일어나 있으면 어때?"

그 한마디를 통해 저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최악의 시절을 보내면서 많은것을 잃었고 포기해야했지만, 그 빈자리는 다른것들로 채워졌습니다. 저는 저라는 사람을 비우고 싶어서 계속 도망치듯 일을 줄이려고 했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야만 될 것 같았죠. 그러나 조금 비웠더니 다른 곳에서 채워지고, 그걸 또 비웠더니 또 다른 곳에서 채워집니다. 총량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이상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최악의 시절이자 최고의 시간들을 보냅니다. 과거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때는 결국 '최악'이 아니었죠. 언제나 '최고'였습니다. 결국 최악과 최고는 바로 옆에 붙어있습니다. 저는 주인공도 악당도 아닌, 최악인지 최고인지도 깨우치지 못하는 시간 위를 걷는 한 명일 뿐입니다. 


최악이면 어떻고 또 최고이면 어떤가요? 그 시기는 언제나 흘러 지나가는 물과 같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최악의 시절이 최고의 시절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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