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길었던 설 연휴도 끝이났다. 현재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나에게 이번 연휴는 엄청 길었다. 설이 주말로부터 이어졌고 대체휴일까지 붙으면서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직장인들에겐 이틀만 출근하면 다시 또 주말을 맞이하는 멋진 기간이기도하다.
연휴 때는 휴식을 빙자해 잉여롭게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었다. 아무것도. 글도 쓰지않았고 인터넷도 거의 안했다. 나는 며칠간 돼지처럼 맛있는 음식과 비싼 밥을 먹고 누워서 TV를 멀뚱멀뚱 보거나 책상에 앉아서 책을 조금 읽는 것으로 설을 보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대신 이런저런 생각은 정말 많이했다. 시간은 남아도는데 할 일은 없으니, 할 것이라곤 그저 생각 뿐이었다. 앞으로의 방향이나 삶의 진정성에 대해, 내 블로그의 운영과 SNS에 대해, 글쓰기 타입이나 열정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같은 철학적인 질문들과 '돈'과 관련된 경제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물론 지금 생각나는건 많지않다. 망각 속으로 모든게 사라졌다.
애초에는 그동안 읽지 못한 책도 많이보고 지금보다 훨씬 생산적인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귀찮음에 밀려 물거품이 됐다. 타임머신을 타고 5일 뒤로 건너뛴 것만 같다.
양력 1월 1일, 그러니까 새해를 맞고나서 며칠간은 '새해'라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새해 목표도 세우고 앞으로의 생활에 굳건한 다짐도 해가면서 힘차게 움직였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또 흐지부지되었다. 마음 속으로는 '아직 음력으로는 새해가 아니니까'라는 약간의 핑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음력 설이 지나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새해인 것이다.
입춘이 지나고 다소 포근해진 날씨 탓인지, 아니면 음력 설을 너무 잉여롭게 보내면서 몸과 마음이 휴식에 익숙해져버린 까닭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새해'라는게 실감이 안난다. 3월이야말로 진정하고 본격적인 새해는 아닐까 싶기도하다. 자꾸만 일정을 미루고 도망가려하는 나 자신이지만 음력 설이 지나니 마음은 조급하고 불안한데, 구체적인 올해 계획이나 일정이 나온건 많지않다. 이 불확실성은 곧 유연함이지만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한다. 그래서 꿈을 좇는 이들과 초보 프리랜서들은 다시금 직장인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시기가 있는데, 유독 심한 기간이 또 이맘때인 것이다. 나 역시 많이 초연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멀었다. 불확실과 무계획인 앞으로의 일들이 떨리고 두려운게 사실이다.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거기에 나온 한 젊은 청년은 래퍼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다.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의 대부분이 생활비로 나가는 상황이지만 틈틈히 가사도 쓰고 녹음도 하는 장면이 나왔다. 3개월을 빠듯하게 일하면 1개월은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그는 매일 국도없는 계란간장밥을 먹으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인상깊었고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계란밥에 계란을 2개 넣으면 스웨그(Swag)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는 정말 멋진 철학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어떤 것에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미친듯이,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무언가를 해야하건만. 나는 지금껏 그런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미친듯이 해야할까?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나간다. 이제 본격적인 새해다. 선거가 끝나면 포스터를 뜯어낸다. 이제 여유기간이 끝났으니 핑계를 뜯어내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발맞춰 열심히 움직여야할 때다. 올해의 목적지는 보다 많이 읽고, 쓰는 것이다. 올해는 나중을 위한 자기계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다. 솔직히 잘 될지는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4년전 오늘 썼던 글이다. 제목은 칼럼이거나 에세이거나, 둘 다 아니거나. 부제목은 핑계는 뜯어내였다.
4년이 흐른 지금, 당시보다 통장의 잔고는 여유가 좀 생기는 듯 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때보다 더 조급하다. 여러가지 고민들과 잡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하고 매일 새벽까지 밤 잠을 설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나고 마음의 여유와 공백이 사라진 것 같다. 다이나믹듀오의 노래처럼 U-turn하고 싶을 때도 있다.
작년 한 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이사를 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의하느라 자가용을 2만키로 이상 탔고 타이어를 두 번 인가 한 번 인가 바꿨다. 엔진오일도 여러번 교체한 기억이 난다. 돈을 열심히 벌긴 했지만, 어디에 썼는지 남아있는건 '텅장'인게 문제다.
다큐에 나온 누구처럼, 나는 이제 더 이상 간장계란밥에 계란 2개를 넣는걸로 스웨그 할 수 없다. 요즘엔 플렉스(flex)라고 부르던가? 설에 사 둔 계란 한 판이 아직 냉장고에 그대로인데 어제도 아무렇지 않게 피자를 먹었다. 그때보다 맛있는걸 먹고 더 좋은 공간에서 따뜻하게 지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기쁘거나 행복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4년동안 여러가지로 바뀐게 많다. 주변 환경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다.
바뀌지 않은게 있다면, 새해 계획이 흐지부지되었다는점 정도다. 계획을 세우든 세우지 않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건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목표 수립과 비전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계획대로 되는 일이 많지가 않다는 사실을 동시에 인정할 수 밖에 없다.
2월은 괴로운 계절이다. 양파 껍질을 한꺼풀 뜯어내면 안에 또 양파가 있는것처럼, 핑계도 뜯어내면 안에 또 다른 핑계가 있다. 그걸 또 뜯어낸다고해도 그 안에는 더 강력하고 더 튼튼한,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합리적인 핑계가 또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 썼던 자신의 글을 읽어보는건 묘한 재미가 있다. 그때의 나를 내가 지금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해줘야할까? 그렇다면 반대로 4년 뒤의 내가 지금 나에게 와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대충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할지 희미하게나마 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