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위한 여행에서 얻는 것
성격이 급한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기차나 버스, 승용차를 오래 타야 해서 시간이 아깝다 생각했고, 이동하는 시간이 지루했다. 여행지에서 쓰는 비용이 낭비 같았고, 내 세계관에서의 ‘여행’은 본질적인 ‘여행’이라기보다는 ‘관광’에 좀 더 가까워서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였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나는 궁둥이 붙이고 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걸 선호했던 까닭에 장거리 출장이 가장 싫었다. 어떤 직원은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장이 더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블로그에 여행 글을 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졌기에, 남들 다 하는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일상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과 체력만 없었지 차도 있고 돈도 있었다. 피곤함을 감수하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주말마다 여기저기 다녔다. 이때의 여행은 오로지 ‘관광’이었던 탓에 쫓기듯 바쁘고 힘들었다. 말로는 ‘힐링’이었지만 그때뿐, 현실로 돌아오면 피로와 사진만 덩그러니 남는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글을 쓸 때, 자료나 검색, 상상력만으로는 어느 순간 한계가 온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는 애초에 상상력이 나올 수가 없다.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도 어떤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책의 글귀가 될 수도 있고 영화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으며 여행지에서의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쓰기 관련 책과 작가들의 책을 탐독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세계적인 문호들과 위대한 작가들, 글 꽤 쓴다는 글쟁이들이 누구보다 여행 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자서전이나 산문집을 읽어보면 짧게는 몇 개월, 많게는 몇 년, 심지어 수 십 년간 여행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여행 정보를 전달하는 여행 작가로서의 관점이 아니라 순수한 창작물에 대한 관점이다. 국내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문학적 분위기가 풍부한 해외에서는 글 쓰는 사람을 위한 오래된 호텔도 있다. 예컨대 글이 잘 써지는 호텔로 유명한 일본 도쿄의 야마노우에 호텔(hilltop hotel)에는 객실 내에 보통의 테이블이 아니라 글쓰기용 책상이 있어서 작가들은 이 책상에서 영감을 얻으며 글을 만들어낸다. 오로지 창작을 위한 여행이다. 아니, 현실로부터의 ‘떠남’에 가깝겠다.
내가 <1인분 청춘>과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블로그>를 출간한 뒤 부딪힌 장애물은 감성의 부재였다. 내 글은 감정 없는 기계 같았고 말라 비틀어진 과일처럼 아무런 흥미가 생기지 않는 텍스트 매립장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통해 글 스타일을 새롭게 고치고자 했다. 점점 매력을 느끼면서 했던 여행은 내 글에 아주 조금이지만 생명을 불어넣었다.
여행은 감성을 자극한다. 여행지에서 온몸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 지리, 전설과 설화, 음식, 향기, 체험은 아주 좋은 소재가 된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인상 깊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모두 독특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꿈을 위해 인생을 던질 만큼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 내 주변에는 없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나는 그들을 만난다. 그들은 평범하지 않아 아름답다. 누구는 몇 년간 집 없이 전국 일주를 하고, 누구는 직장 없이 유목민처럼 돌아다니지만, 여권에 도장이 가득하다. 가십거리가 아닌 진지한 얘기를 할 때, 이를테면 자신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눈빛은 밤하늘의 북극성보다 더 빛난다. 이 시점에서 평범하지 않은 내 인생에 대해 위로받고 동료애가 자란다.
간혹 소설가나 에세이스트를 만날 때 나는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데, 그들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이 내가 원하는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유머러스하고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글은 빡빡하고 숨 가쁘게 흘러간다. 내가 그들로부터 배운 점은 모든 것을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집 앞 높은 산의 이름을 몰라도 지금껏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누군가 “너는 왜 그렇게 사냐?”고 물어도 웃어넘길 수 있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 자유분방함과 색다른 시선, 다른 사람들과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해적 같은 인생은 본보기가 된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은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다. 요즘은 지루한 이동시간을 차분히 참을 정도로는 발전했다. 이동시간을 견뎌야만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몇 년간 여행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조금만 참고 버티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성격 급한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진리를 이해한 것이다.
여행은 특히 소설이나 수필 같은 감성적인 글에 탁월한 문장을 제공한다. ‘살고 있다’보다 ‘시간이라는 길을 걷는다’가 좀 더 매력적이다. 이 문장은 요즘 여행지마다 하나쯤은 있는 OO 길을 직접 걷다가 문득 떠올랐다. 이것이 글쓰기와 여행의 연결고리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에 투자해보는걸 권하고 싶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창작을 위한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