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인생

난 어른의 출석부에 결석한다

by 남시언

과거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 동네에는 정신이 약간 모자라 보이는 바보 같은 녀석이 한두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현실에 만족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막노동이든 아르바이트든 신문 배달이든 뭔가를 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듯하다. 돈에 눈 먼 악덕업주는 그들에게 최저 시급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노예처럼 부려먹기도 하고, 달콤한 말로 그들이 뼈 빠지게 모은 돈을 강탈하거나 절도하기도 한다. 이런 소문들은 시장통에서 지내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참 바보 같지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 그들을 향해 '왜 저렇게 사냐….'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지금 애처로워 보이는 건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나’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 중 아주 사소한 것도 포기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토록 똑똑하고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솔직한 인생을 비판하는 데는 도가 텄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용기는 없기에 불쌍하다.

사회적 바보.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세상의 진리에 따라(너무도 당연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결국, 꿈이란 건 포기와 동의어다. 이때의 결정에 따라 인생은 각기 다른 길로 접어들고, 서로 다른 길 위에서 판가름난다.

이렇게 사는 사람, 저렇게 사는 사람,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사회집단을 구성하고 있지만 다수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목표물이 된다.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일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바보를 자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수결에서 빠져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만큼 꿈을 향해 질주하는 삶도 녹록지만은 않다.

지금 우리나라에 여행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고, 사진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다. 여행은 문화적으로 가장 성공한 유행이고, 각 도시는 똑같은 '문화관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관광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SNS에는 정치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직장생활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없다. 직장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전문가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주위엔 온통 전문가들뿐이다.

나는 사회가 무엇이고 성공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무엇이 인생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내 일(job)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틈도 없이 사회로 떠밀리듯 밀려 나갔다. 단지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형적인 교육과정에서 나는 삶에 있어 중요하다 싶은 그 어떠한 것도 배울 수 없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직장 전문가들은 이래라저래라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성공만을 원하게 된다. 직장, 돈….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는데도 언젠가부터 원하게 되는, 아니 원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삶이 시작된다.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지내면서 나 역시 직장 전문가가 되고, 세월이 지나 '또 다른 나'를 만났을 때, 전문가를 자청하며 그들에게 이야기하게 되겠지. "너는 이렇게 저렇게 살도록!”

성공을 위해 살았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소중한 것들을 참 많이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찰나였다. 스치듯 놓쳤던 것들이 떠오른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도, 고생하며 울고 웃던 상황도 없다. 이게 어른이었고 샐러리맨의 생활이었다. 어른의 인생은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답답하고 지루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반복이었다. 그 무엇도 나를 흥분시키지 않았다. 평이. 높낮이 없는 삶. 현실주의자. 이것이 어른의 인생이었고 ‘성인’이라는 이름의 출석부였다. 오늘도 나는 어른의 인생에 결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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